Q. 피휘법(?)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 나라에서 피휘법은 고려 때 유행하였다. 역사서, 문집, 금석문의 탁본 등 고려 때 나온 자료의 문장을 조사해 보면, 태조의 아버지인 세조의 휘자 ‘융(隆)’, 태조의 휘자 ‘건(建)’, 혜종의 휘자 ‘무(武)’, 정종의 휘자 ‘요(堯)’, 성종의 휘자 ‘치(治)’, 목종(穆宗)의 휘자 ‘송(誦)’을 피휘하기 위해 결획하거나 대자한 것을 볼 수 있다.그 중 피휘결획은 ‘{{%113}}’·‘{{%114}}’·‘{{%115}}’·‘{{%116}}’과 같이 획의 일부를 궐필(闕筆)해 식별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피휘대자는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바꾸어 썼기 때문에 식별이 좀 까다로운 편이다.세조의 휘자 ‘융’의 경우 ‘정륭(正隆: 금나라의 연호)’을 ‘정풍(正豊)’으로 바꾸어 썼고, 태조의 휘자인 ‘건’의 경우 ‘건안(建安: 후한 헌제의 연호)’을 ‘입안(立安)’, 그리고 ‘건염(建炎: 남송 고종의 연호)’을 ‘입염(立炎)’으로 바꾸어 썼다.혜종의 휘자인 ‘무’의 경우 ‘홍무(洪武: 명나라 태조의 연호)’를 ‘홍호(洪虎)’로, 후한 무제(武帝)를 ‘호제(虎帝)’로 바꾸어 썼다. 또한 966년(광종 16) 5월에 세워진 문경의 봉암사 정진대사원오탑비(靜眞大師圓悟塔碑)에 ‘무반(武班)’이라는 관직을 ‘호반(虎班)’으로 피휘하였다.성종의 휘자인 ‘치’의 경우 ‘지치(至治: 원나라 영종의 연호)’를 ‘지리(至理)’로, ‘혁거세 치(治) 육십 년’을 ‘혁거세 이(理) 육십 년’으로 각각 바꾸어 썼다.이외에도 국휘의 범위가 넓어지자 왕의 이름만이 아닌 태자(太子)의 이름도 피휘하는 경우가 있었다. 1133년(인종 11) 2월에 원자(元子) 철(徹: 의종)을 태자에 책봉하였는데, 당시 문신이었던 김부철(金富轍)이 김부의(金富儀)로 이름을 개명하였다. 또한 1198년(신종 1)에 왕의 이름인 탁(晫)과 같은 발음을 가진 탁(卓)씨 성을 가진 자는 외가(外家)의 성(姓)을 따르도록 하고, 만약 내외가(內外家)의 성이 같은 경우에는 내외조모(內外祖母)의 성 중에서 하나를 따르도록 명령하였다.
Q. 유럽에서 최초로 개최된 세계박람회는 어땠나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 박람회는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습격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차원에서 열렸으며 경제를 활성화하고 프랑스를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으로도 여겨졌다. 이 박람회에는 61,722개에 달하는 공식 전시 기업이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25,000명이 프랑스 밖에서 왔다. 전체 참가 기업 가운데 55%는 프랑스의 기업이었다. 전체 관람객 수는 32,250,297명에 달했고 참가국은 35개국에 달했다.박람회장 입장료는 40상팀으로 책정되었는데 당시 파리의 카페에서 고기와 채소로 구성된 "경제적인" 요리가 10상팀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높은 편이었다. 관람객들은 박람회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러 명소에 대해 추가 비용을 지불했는데 에펠탑 등반 비용은 5프랑이었다. 그 외에 인기 있는 파노라마, 극장, 공연장 입장료는 1프랑이었다. 프랑스의 여러 지방에서 온 관람객들은 기차 요금과 박람회장 입장권이 포함된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다. 박람회의 전체 비용은 41,500,000프랑이었고 수입은 49,500,000프랑이었다. 이 박람회는 수익을 창출한 마지막 파리 만국 박람회이기도 했다.이 박람회는 프랑스의 군주제 폐지를 축하하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벨기에, 스페인,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러시아,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거의 모든 군주제 국가들이 박람회에 불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의 많은 시민과 기업이 참여했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벨기에, 브라질, 청나라, 덴마크, 이집트, 스페인, 영국과 그 식민지,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페루, 포르투갈, 루마니아,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개별적 또는 비공식적인 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전적으로 민간 후원을 통해 참여했다. 이 박람회는 조선이 최초로 참가한 만국 박람회였는데 민영찬(閔泳瓚)이 대표로 파견되었을 뿐 별도의 전시관을 마련하지 않
Q. 고대 수필의 종류와 특징 및 작품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문 수필 : 신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최치원의 [쌍녀분] 등이 초기의 작품이며 고려 때에는 이규보의 [백운소설], 이인로의 [파한집], 이제현의 [낙옹패설]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고 조선에 와서는 서거정의 [태평한담], 성현의 [용제총화],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이 유명하다.② 국문 수필 : 주로 여성들에 의해 쓰여졌는데 유씨 부인의 [조침문], 작자 미상의 [규중칠우쟁론기], 연안 김씨의 [의유당 관북유람일기],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등이 잘 알려져 있다.③ 근대 수필 : 188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시작으로 이광수와 최남선에 의해 본격적으로 쓰여졌다.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 최남선의 [심춘순례], [백두산 관참기]가 발표되고 뒤이어 김진섭, 이양하, 피천득 등의 뛰어난 수필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