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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광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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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광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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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나라의 국사를 건 전투에서 십자가를 보았고 기독교의 힘으로 전쟁을 이기고 나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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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진왜란 이후 기술자,장인들의 인식이 안 좋았나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귀국을 거부한 이유는 이미 왜에 30년 이상 살아서 손자 손녀 아내가 일본인이고 새로 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한국은 가난하고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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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금을 용에 빗대어 용안,용상 이라 한이유?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용이 동물들의 우두머리고 능력이 우월하고 딱 하나 밖에 없는 특이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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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병자호란 이후 인조와 소현세자의 사이와 갈등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가 청의 심양에 있을 당시 청나라 사람들과 무역을 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내용과 귀국 후 곧바로 죽은 사실을 기록함으로써세자의 죽음에 인조가 상당한 관여를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실록에서조차 약물 중독을 언급할 정도로 독살설의 의혹이 제기되었다.실제 인조는 세자의 장례도 서둘러 마쳤고, 가장 중요한 후계 문제에 있어서도 특별한 결정을 내린다. 당시 소현세자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지만 인조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결국 인조의 둘째 아들이자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후의 효종)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왕위 계승의 원칙에 어긋나는 방식으로서 인조가 소현세자를 극도로 불신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게 한 영조조차도 왕위는 세자의 아들인 정조에게 물려준 것만 보아도 인조의 조처는 파격적임이 분명하다. 왜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소현세자가 보낸 심양에서의 8년 간의 생활에서 그 단서가 찾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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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화랑도의 교육적 기능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실생활 중심의 전인교육: 화랑도는 유학교육과 심신수양, 인격도야와 정서함양을 추구하는 실생활을 통한 전인교육을 지향했다. 이러한 화랑도의 교육은 중세 유럽의 기사도 교육과 유사하다. 2) 유학교육: 시경, 서경, 예기 등의 경전 학습을 통해 신라의 통치규범과 정치이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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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옛날에는 정말 남자도 머리를 길러 땋았나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옜날 시대에는 유교 사상과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고 미용실 같은 것이 잘 발달하지 않아서 머리를 자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건 일제강점기 때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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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 수공업 발달 양상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후기 산업활동의 진전은 농업·수공업·광업·상업 등 모든 산업분야에서 일어났다. 농민들은 황폐한 농토를 개간하고 수리시설을 복구했으며,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영농방법을 개선하고, 보다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여 상품화하기도 하였다. 이와 아울러 생산체계에 있어서도 보다 넓은 농지를 경작하는 廣作이 보급되고, 임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經營型富農이 나타났는가 하면, 지주·전호의 관계에 있어서도 賭租制가 유행하여, 이를 토대로 佃戶權이 성장해갔다. 수공업에서는 본래 부역제를 토대로 하여 운영되던 관영수공업이 쇠퇴하고, 그리하여 장인의 등록제가 폐지되면서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생산하는 민영수공업이 성장하여 갔다. 제조업에서의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 원료 생산이 촉진되어 광업도 활성화되었다. 특히 對淸貿易에서 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私採 또는 潛採에 의한 은광의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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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사람은 오른쪽 왼쪽중 한쪽을 더 많이 잘 쓸까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한 답은 없지만 오른쪽을 많이 쓰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오른손이 더 섬세하고 정교해서 작업을 할 때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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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 역사중 가장 강성했던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시대별로 보면과거 이집트중세 페르시아 근대 6.25 전일본, 영국6.25 후 러시아 이스라엘 이렇게 가 시대별 강대국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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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 후기 논과 밭농사 방식과 농서 및 지대 방식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에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根耕法과 間種法이 있었다.0065) 근경법이란 밭에 작물을 재배하여 수확하고 난 이후에 곧바로 후속 작물을 재배하여 수확하는 방법으로서 1년에 2번 또는 2년에 3번 작물을 재배하는 형태였다. 예를 들면 9월에 가을보리를 심어 5월에 수확하고 난 후, 그 밭에다 조나 콩 등을 심어서 9월경에 수확하는 방식이었다. 간종법은 밭에서 작물(前作物)이 자라고 있는데, 그 사이에 다시 작물(後作物)을 파종하여 전작물을 수확할 때까지 같이 재배함으로써 1년 2작을 행하는 경작방식이다. 예를 들면 보리밭 사이에 콩이나 조를 심거나, 콩밭 사이에 보리를 심어 재배하여 수확하는 경우나,0066) 목화밭 사이에 참깨나 콩을 심는 경우 등이었다.0067) 물론 이 근경법과 간종법은 조선 전기에도 행해졌지만, 그것이 전면화되는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였다.≪농사직설≫에 의하면 가을 보리를 수확하고 난 이후에 조나 콩 등을 심는 근경법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까지도 근경을 행하여 1년에 2번 경작하는 밭은 1/4∼1/3밖에 되지 않았다.0068) 18세기 이후 근경법이 널리 행해졌고, 19세기에 들어와 일반화되었다. 서유구는 그러한 현상을 “보리를 수확한 후 콩이나 조를 심는데 그것을 근경이라 하며, 근래 농가에서 널리 행한다”0069)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도 간종법은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밭이 적은 농부가 행하는 방식이었고, 일반적으로 행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근경 못지않게 널리 보급되어 갔다. 특히 경기 이북지방에서는 기후상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근경을 실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신 간종법을 통해 2년 3작 내지 1년 2작을 행하였다. 한전의 작부체계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면 18세기말의 사정을 우하영은≪천일록≫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첫째, 경기의 도성을 경계선으로 하여 북쪽은 밭이 많은 田作지대이고 남쪽은 논이 많은 沓作지대로 대별하였다. 둘째, 작물의 분포상으로 보아 산간지방을 포함하여 도성 이북은 조 중심지대이고, 남쪽은 보리 중심지대라고 보았다. 셋째, 경종방식에서는 함경도가 단작지대, 충청도·전라도·경상도가 근경작지대, 평안도·황해도·강원도가 간종지대라고 보았다. 넷째, 犁耕法으로는 전작지대는 二牛耕, 답작지대는 一牛耕이고, 답작지대 가운데 경기도·충청도·경상좌도의 산간지방은 二牛耕지대라고 분류하였다.0070) 18세기 이후에도 윤작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근경법과 간종법에 의한 작부체계는 지역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었다. 즉 작물재배의 조합형태가 달랐는데, 삼남지방에서는「가을 보리와 콩」을 심는 근경작이 지배적이었고, 경기 이북지방에서는 조를 재배하면서 보리를 간작하거나, 보리를 재배하면서 콩을 간작하는 1년 2작의 간종법과 이 두 방식이 결합된, 조를 심고 수확한 후에 가을 보리를 재배하면서 콩을 간작하는 2년 3작이 행해지고 있었다.0071) 또한 채소나 상품작물을 재배하여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농민은 농사에 열심이어서, 1년에 3번 경작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8세기말에 麻·연초·무우를 윤작함으로써 1년에 3번 경작하여 많은 이익을 얻는 농민이 있었다.0072) 이와 같이 18세기말 이후에는 작물을 여러 번 경작하여 농업생산력을 향상시켜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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