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유관순 열사가 어린나이에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관순 열사는 1902년 충난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1918년에 태어나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 학당 고등부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가혹한 무단 정치를 보면서, 프랑스의 잔다르크 와 같이 나라를 구하는 소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그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동료 학생 6명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고, 3월 10일 임시 휴교령이 내려지자 독립선언서를 숨겨 고향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유림대표등과 함께 4월 1일 정오에 충남 천안 병천면에 있는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진행하기로 모의했습니다. 그리고 3월 30일 매봉에서 만세 운동을 알리는 봉화를 올리고, 다음날인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준뒤, 3,000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주동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Q. 과거에는 치마를 남자와 여자가 모두 입었었다던데 어떤 계기로 인하여 치마는 여자의 옷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남자들도 모두 치마를 입었는데, 심지어 갑옷이었던 로리카 마저도 하의는 무릎이 드러날 만큼 짧았을정도의 치마를 입었지만, 고대 로마의 남자들은 후대로 들어서자, 바지를 입게되었는데, 그 이유는 갈리아, 브리타니아 등을 정복한 뒤에 거기서 살아가다보니 이탈리아와 달리 그곳은 겨울이 무척이나 추웠는데, 긴 치마를 입자니 활동이 불편해지고해서 결국 바지를 입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3세기 이후에는 일부 로마군에서도 바지를 도입해서 입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