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에도 현대의 도서관같은 것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세종 때의 집현전(集賢殿)이나 정조 때의 규장각(奎章閣)을 비롯하여 많은 왕실도서관이 있었다.규장각은 1910년 국권피탈로 폐쇄되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관장하다가 1923년 경성제대(京城帝大)로 옮겨졌으며, 현재 그 장서는 서울대학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왕실문고 외에 교육문고로는 관학의 태학문고(太學文庫)와 사학의 서원문고(書院文庫)를 들 수 있다. 태학문고로는 성균관(成均館:1398년 건립)의 존경각(尊經閣:1475년)을 빼놓을 수 없으며, 이 존경각은 대학도서관의 효시라고 볼 수도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도서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Q. 조선시대 궁녀의 선발기준은 어떻게 됬나요?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류심사를 통해 본인과 가족에게 문제가 없다 간주되면 상궁과 색장나인이 면접심사를 했고, 대화나 관찰 등등으로 됨됨이를 심사했다. 이 과정에서 숫처녀인지를 확인했는데, 아주 어린 경우에는 필요가 없었겠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고 간주되면 반드시 했다. 구한말에는 13세 이상일 경우 확인했다. 앵무새의 생혈(生血)을 후보자의 팔목에 묻힐 때 묻으면 숫처녀라고 간주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었다.문제없다고 간주되면 상궁이 합격자에게 입궁날짜를 가르쳐주고, 궁궐에서 치마저고리와 바지의 재료인 명주 1필을 지급했다. 입궐하는 날 궁궐에서는 소녀가 탈 가마를 보냈고 직속상관 앞으로 가 인사를 한 뒤 주의사항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