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에 여자들은 바지를 아예 입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지는 아랫도리에 입는 옷의 하나로써, 바지라는 말은 기록상으로 정인지가 ‘파지’라고 한 것이 최초이며 영조때 간행된 , 에 모두‘파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말기의 에서 ‘바지’라는 기록이 처음 보인다. 왕과 왕비의 바지는 특별히‘봉디’라 하였다.우리나라의 바지는 고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옷의 기본 복식으로 형태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마루폭, 사폭, 허리로 구성된 남자바지는 조선시대에 사폭이 조금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정도이며 그 기본형에 변화가 없이 명칭만 변화되면서 바지, 고의, 잠방이라고 하여 겉옷과 속옷으로 입었다. 한국 고유복식의 넉넉하게 지어지는 남자바지에 대하여, 합리성을 넘어선 융통성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여자의 바지는 속옷화하여 조선시대에는 밑이 벌어지는 형태가 되었다가 근래에는 다시 원래의 막힌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 , , , 에 바지와 이의, 말군, 봉디, 너른바지, 누비바지 등 다양한 기록이 보인다.바지의 형태는 조선시대 말기 이후의 단속곳과 같은데, 단속곳은 조선시대 여자들이 속옷의 하나로 치마 속에 입었던 가랑이가 넓은 홑옷이다. 본 유물은 전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길이 95cm, 허리 40cm에 이르는 속바지이다.[네이버 지식백과] 바지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고유복식, 2002.,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조선시대 여성의경우 겉옷은 그런경우가없고 속바지만 착용했던것으로 보입니다.
Q. 애니 매트릭스에서 등장하는 천수관음상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칠관음의 하나. 과거세(過去世)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갖기를 발원하여 이루어진 관음으로, 눈과 손은 자비로움과 구제의 힘이 끝없음을 나타낸다.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며 소원을 이루어 준다. 형상은 앉거나 선 두 가지 모양으로, 양쪽에 각 20개의 손이 있고 손바닥마다 한 개의 눈이 있다. 이 손과 눈은 각각 25유(有)를 구제하므로 손도 천 개, 눈도 천 개이다. 육관음의 하나이기도 하다고합니다.
Q. 거상 김만덕은 어떤 식으로 조선 시대에 업적을 쌓았나요?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739년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만덕은 열두 살 때 부모를 잃고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그녀는 기생의 몸종으로 들어간 뒤 관청에 소속된 기생이 되었으나,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는 기생의 신분을 벗고 양인이 되어 객주를 차렸다. 객주란 상인들의 물건을 대신 팔아 주거나, 상인과 상인 간의 거래를 도와 돈을 버는 상인을 뜻한다. 김만덕은 사업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녀는 객주 활동 외에도 여관과 식당, 특산물 거래 등을 해서 오래지 않아 큰 부자가 되었다.그런데 당시 제주도에서는 극심한 흉년이 여러 해 계속되었다. 굶어 죽는 백성들이 줄을 잇자, 조선 조정에서 이들에게 나누어 줄 구호 식량을 보냈지만 운반하던 배가 그만 침몰하고 말았다. 이에 김만덕은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풀어 죽어 가던 제주도 백성들을 구해 냈다. 당시 김만덕이 살린 백성의 수가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김만덕의 선행을 전해 듣고 크게 칭찬했다. 또한 “한양에서 임금님을 뵙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도 들어주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기생이었던 여자가 임금을 알현(높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제주도민들은 섬 밖 출입이 철저히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김만덕의 임금 알현은 매우 큰 상이었다. 채제공, 정약용, 김정희 등의 학자들은 김만덕의 선행을 기리는 글과 시를 많이 남겼다.[네이버 지식백과] 김만덕 -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조선 후기의 큰 상인이자 여성 상인 (한국사 사전 3 - 나라와 민족·기구와 단체·역사 인물,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