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서울의 옛 이름이 경성이었나요? 일본이지었나요?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인 1910년 10월 1일부터 8.15 광복 이후 경기도 서울시로 개칭되어 폐지된 1946년 8월 11일까지 만 35년 10개월 10일 간 존속한 경기도에 속한 옛 행정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입니다. 일본어로는 게이조후(けいじょうふ)라고 했습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제강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대한제국 수도였던 한성부! 대한제국 수도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0월 1일부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가 발표됨에 따라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되어 경기도로 편입되었으며, 경기도청 직할 구역이 되었습니다. 비록 1910년부터 1946년까지 경기도 관할지역으로 격하되기는 하였지만 식민지 조선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경성이란 표현은 수도(京)+성곽(城)이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쓰였습니다. 경셩으로 표기했으며 이는 지명이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임금이 거하는 '서울'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입니다. '서울'이란 이름도 이 경성의 직역 또는 그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경성(게이조)'이라는 이름이 일본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당대 명백한 성곽도시였던 서울의 모습이 '京+城'로 개칭을 하는것을 당연시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경성(京城)은 일제가 강제로 한양의 수도 지위를 박탈하고 한양 일부(1936년 이후에는 여기에 근교 경기도 지역도 포함)를 하나로 묶어 '경성부'라고 이름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이전 보통명사 '경성'과 일제강점기 고유명사 '경성'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알아야 할듯합니다.
Q. 징기즈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하던 당시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 제국 통치 시기에는 종교적 관용과 함께 인종의 평등을 지향하여 제국의 평화와 질서 유지는 동서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교역을 통해 몽골 제국은 부유했고 자연스럽게 과학과 문화예술도 함께 국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발전하였습니다. 하나의 통일된 체제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문명·문화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비롯해 황하 문명, 인더스 문명, 유목기마민족 문명, 불교 문명, 페르시아 문명, 이슬람 문명 등 동서고금의 주요 문명이 서로 교류되면서 일정부분 교차 융합되었습니다. 이른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열매를 꽃피웠고, 이는 놀랍고도 경이로운 동서교류를 관통하는 진정한 세계사의 산파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양성 인정과 문화의 차이점을 존중하는 몽골제국의 다원주의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문물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전통적인 비단길을 기초로 몽골제국이 이룩한 초원길은 더욱 안전한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교역로로 이어졌고, 나아가 ‘대항해시대’의 바닷길도 열렸습니다. 이를 역사적으로 고증하는 마르코 폴로의 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렸을 만큼 서양인의 눈으로 고증한 역사적인 여행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