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방사선 무기 중 핵폭탄 외에 코발트탄이라는 무기는 어떤 무기인가요?
안녕하세요. 우선 서치 결과 핵무기중에 하나인 코발트탄이며, 참고로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등이 공식적으로 핵보유국이고 북한은 98년 지하핵실험때 실패한것으로 드러났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소규모의 핵폭탄 소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추가적으로 코발트탄의 위력은 TNT 10억톤의 폭발력. 피해정도가 알려진바에 의하면 살상 범위는 8000 km (킬로미터) 이며 51만 2000 ㎢ (제곱 킬로미터)안에있는 모든 동식물을 남기지 않고 다죽일정도 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및 추천 부탁드려요~ ^^
Q. 조선시대 대표적인 발명품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대표 발명품 인물별로 간략히 정리 해드려요~ ^^◐ 장영실이 만든 발명품① 측우기첨부 이미지조선 세종 이후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로 1441년 세종 23년 8월에 호조가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다음해 5월에는 측우에 관한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측우기를 만들어 서울과 각 도의 군현에 설치하였다. 조선 세종 때의 측우기가 과학사상 뜻깊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는 사실이다.② 앙부일구(해시계)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특히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며, 과학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③ 자격루(물시계)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물시계의 원리를 보면,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이 쇠 구슬은 다른 쇠 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지금 남아 있는 물시계는 쇠 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이 없어진 채, 물통 부분들만 남아있다.④ 갑인자경자자(庚子字)가 납(蠟)을 판(板) 밑에 펴서 그 위에 글자를 차례로 맞추어 꽂아 사용하는 형태이므로 글자가 쏠리고 비뚤어지는 등 정밀하지 못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세종 때 만들어진 갑인자는 조선시대 활자의 기본이 되었으며,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되어 갔다. 갑인자는 우리 글자를 만들고 처음 만들어진 활자본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⑤ 수표교조선 세종 때 청계천에 가설한 돌다리.서울유형문화재 제18호. 길이 27.5m. 너비 7.5m. 높이 4m.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장충단공원 소재. 6모로 된 큰 다리 기둥에 길게 모진 도리[桁]를 얹고 그 사이에 판석(板石)을 깔아 만들었다◐ 정약용이 만든 발명품◎ 거중기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데 사용하던 재래식 기계로,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것이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수원성 공사에는 왕실에서 직접 제작된 거중기 1대가 사용되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낳은 걸작.◎ 훈민정음1443년(세종 25년) 완성되어 1446년 음력 9월 상순(양력 10월 상순)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말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한때 언문(諺文)·언서(諺書)·반절(反切)·암클 등으로 낯춰 불리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는 '한글'이라고 한다. 문자체계의 특징은 한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는 음소문자(音素文字)이면서 음절단위로 적는 음절문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 점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자체계는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모두 28자였으나, 그중 초성의 '첨부 이미지,첨부 이미지,ㅿ'과 중성의 '첨부 이미지'가 폐기되어, 오늘날에는 24자만 쓰인다. 그밖에 28자를 이용한 병서(竝書)·연서(連書) 문자가 쓰였으며, 성조를 표시하는 방점이 쓰였다.◐ 이순신에 의해 재창작된 거북선◎거북선거북선은 고려말, 또는 조선 초기에 이미 제조·사용되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는 이순신(李舜臣)에 의하여 창제된 철갑선으로서의 거북선이 실용화되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및 추천 부탁드려요~ ^^
Q. 소리로 유리잔을 깰수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깰수가 있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소리는 파동입니다 파동으로는 공명을 이용해 깰 수 있지만 정확히 설명드리면 고유진동수는 어떤 물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진동수인데,이는 그 물체의 강성과 질량에 관련됩니다.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고유진동수=(강성/질량)^(1/2) 강성이 4배증가하면 고유진동수는 2배 증가하고, 질량이 4배 증가하면 고유진동수는 2배 감소하죠. 이러한 고유진동수와 외부진동수가 일치하게 되면, 그 물체에 심각한 변형이 발생합니다. 즉 파손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및 추천 부탁드려요~ ^^
Q. 설날에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는 이유는 뭔가요? 따로 유래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욕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는데, 우리는 이를 '설빔'이라 합니다. 조상이나 어른 앞에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뜻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뒤에 부모님이라든지 웃어른들께 세배를 합니다. 세배를 하는 이유는 하늘의 신에게 무사고를 기원하며 절하던 것이 어느덧 어른에게 존경심을 나타내는 풍속으로 변한 것입니다. 새해 아침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안방에 차례상을 차려 놓고 조상 앞에 한 해의 시작을 알리고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이를 '차례'라고 합니다.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뒤에는 세배를 합니다. 가족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평소 존경하는 스승이나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먼 곳에 사는 친척에게는 대개 정월 보름(15일)까지 찾아가 세배를 드리면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여깁니다.세배의 유래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절하는 풍속과 관계가 있습니다. 절은 공경의 뜻으로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 고개를 숙이는 우리의 전통적 예의 표현입니다. 고구려에는 무릎을 꿇어 절하는 풍습이 있었고, 부여에서도 여럿이 모여 있을 때는 서로 절하는 예절이 있었습니다.특히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일월신에게 절함으로써 한 해의 무사함을 기원하였습니다. 이것이 세배의 유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무사고 기원이 어느덧 존경을 나타내는 의미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도움이 되셧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