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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도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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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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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신분을 확인하는 일종의 신분증이었던 '호폐법'을 만든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알록달록동그라미417님.호폐법은 조선시대에 시행된 제도로,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각 가정의 인원과 신분, 직업 등을 기록한 '호폐'라는 문서를 통해 관리되었습니다. 호폐법은 이런 호폐를 통해 인구 조사를 실시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군역 의무를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그러나 이 호폐법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먼저, 호폐는 주로 지방의 장악권을 가진 향반들에 의해 관리되었는데, 이로 인해 향반들의 부정집행이나 변조가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호폐법은 사회적 약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노비와 천민, 부르지아 등의 사회적 약자들이 호폐를 통해 그들의 이동과 활동을 제한받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호폐법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폐법은 그 시대에 있어서는 중요한 행정 수단이었으며,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필요한 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가 지나치게 강화되거나 오용되면 인권 침해나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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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치기라는 놀이의 방식은 무엇이고, 현재도 이 놀이가 전해지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밝은큰고니27님.쉽게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전통 야구게임?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나무작대기로 나무를 쳐서 멀리 보내는 놀이이며, 아래는 게임규칙과 자치기에 대한 설명입니다."자치기"는 한국의 전통놀이 중 하나로, 특히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입니다. 놀이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원형의 작은 나무판을 바닥에 놓습니다. 이 나무판을 "자"라고 부릅니다.그 다음에, "자" 위에 또 다른 나무판을 놓습니다. 이 나무판은 "자"보다 조금 더 큰 것으로, "치"라고 부릅니다.참가자들은 순서를 정한 뒤, 각자 차례에 "치"를 걷어차서 "자"를 날리는 것이 목표입니다."치"를 걷어차서 "자"를 가장 멀리 날린 사람이 이기는 놀이입니다."자치기"는 현재도 일부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통놀이를 소개하거나, 체험하는 학교의 행사나, 지역의 축제에서는 이런 놀이를 접하거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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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과 김홍도 선생이 추구했던 그림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알록달록동그라미417님.조선시대의 두 대표적인 화가인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에서는 각자의 스타일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신윤복: 신윤복은 "백미도"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여성을 주제로 한 그림에서 독특한 색감과 섬세한 필치를 보여줍니다. 그는 주로 고요하고 우아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여성의 내면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림 속 인물들은 대체로 한가하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김홍도: 김홍도는 특히 사군자, 삼국지 등을 주제로 한 작품과,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활동적인 인물들과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생동감을 미세하게 잡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이처럼, 신윤복과 김홍도는 둘 다 매우 탁월한 화가이지만, 그들이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감정, 그리고 그림의 주제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작품에서 각자의 독특한 스타일과 감성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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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이 종교로 발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밝은큰고니27님.무속신앙이 한국에서 정교화된 종교로 발전하지 못한 원인은 다양하게 생각됩니다.체계성 부재: 무속신앙은 민속신앙과 더불어 한반도의 고유 신앙 체계의 일부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산, 강, 돌, 나무 등 자연을 숭배하거나 고유의 신들을 숭배하는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들은 보통 지역과 지역 사이, 심지어는 개개인의 신앙 사이에도 다르며, 전국적이거나 보편적인 체계나 신학이 구성되지 않았습니다.중앙집중적인 종교의 영향: 3국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중앙집중적인 종교가 들어오면서, 이들 종교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는 20세기에 들어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이로 인해 무속신앙은 점차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났습니다.미신 및 사회적 낙인: 무속신앙은 '미신' 또는 '포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일반 사회에서 낙인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무속신앙의 발전을 억제하였습니다.현대화와 과학적 세계관의 확산: 산업화, 도시화, 교육 수준의 향상 등으로 인해 과학적 세계관이 확산되며, 무속신앙은 점차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어 갔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신앙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 정서, 예술 등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이 공식적인 종교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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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북한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사투리가 있나요.
네, 북한에도 각 지역마다 특유의 사투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사투리는 한국어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발음, 억양, 어휘 등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북한에서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를 기준으로 사용하지 않고, 지역별로 그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평양지방에서는 평안도 사투리가 주로 사용되며, 함경도나 강원도 등의 지방에서는 해당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합니다.북한 사투리는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인 요소에 따라 발전해 왔으며, 북한의 특정 지역을 식별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익숙하게 사용되고 전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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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치 문양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걸까요?
나치가 사용한 '학크로스(Hakenkreuz)' 또는 '스와스티카(Swastika)' 문양은 고대 시대부터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서 사용된 상징입니다. 이 문양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고대 문화에서 주로 발견되며, 특히 인도 종교에서는 중요한 신성한 상징으로 간주됩니다.스와스티카는 산스크리트어로 '행복'을 의미하며,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에서 종종 보이는 상징입니다. 이 문양은 또한 유럽의 고대 문화, 특히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발견됩니다.나치당은 이 문양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문양의 고대와 신성한 연관성, 그리고 아리아인이라 여겨지는 인종에 대한 그들의 이상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치당이 이 문양을 사용한 결과, 서구 문화에서 스와스티카는 종종 나치와 연관 지어 생각되며, 이로 인해 그 원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나치의 문양은 다른 문화나 종교의 기호를 왜곡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나치의 문양은 해당 문화나 종교와는 별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해당 문화나 종교와는 연관성이 없습니다. 나치의 문양은 나치 정권과 그의 이념과 관련된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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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의 무당이라든가 신병 이런 것들은 실존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선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개인적인 의견만 드립니다.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당이나 신병같은것은 과학적인 증거나 의학적인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주로 민속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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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옛날 중앙정보부의 권력이 어느정도 였나요?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보기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1년 5월 16일에 일어난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 내외의 정보를 수집하고, 반정부 세력을 차단하며, 때로는 정치적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역할로 인해 중앙정보부는 당시의 사회와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중앙정보부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감시, 첩보 활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압박, 국가보안법 위반 등을 이유로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체포와 구속, 심지어는 고문까지 저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말처럼 두려움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습니다.당시 중앙정보부의 일화 중 하나는, '인민혁명당 사건'이라는 가짜 사건을 조작하여 학생들과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체포를 진행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권력과 국민들에 대한 그들의 압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1981년 1월, 중앙정보부는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변경하고 그 권한은 상당히 제한되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에 민주화 운동 후 국가안전기획부는 국가정보원으로 재편되었으며, 그 권한은 훨씬 더 제한되어 현재는 주로 외국정보 수집과 대북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이유는 국가의 기관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민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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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 시대에도 이혼이라는 것은 가능했다고 들었는데, 왕이 허락이 필요했다는게 사실인가요?
네, 조선 시대에는 이혼이 가능했지만 왕의 허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법과 제도에서는 이혼을 허락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이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조선 시대의 이혼은 "심사 이혼"이라는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이 절차에서 왕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이혼을 원하는 남편 또는 아내는 왕에게 이유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왕은 이혼을 승인하거나 거절할 수 있었으며, 이유에 따라 판단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 불화, 부부간의 불합, 신체적 불능 등을 이유로 이혼을 신청하였습니다.이혼은 당시 사회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가정의 안정과 가치를 중시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이혼을 어렵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혼을 원하는 부부는 상당한 이유와 증거를 갖추어 왕에게 제출하여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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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논어에서 공자가 말했던 것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고기양단"이라는 사자성어는 중국의 고전 '논어'에서 유래한 말로, "무서운 상황을 직접 대면하고 극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소가 날뛰면 그 소의 뿔을 잡아라. 호랑이가 달려들면 그 호랑이의 이빨을 잡아라. 강에 건너가려 할 때는 바로 그 강을 뚫고 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도망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위기를 이용해 나아가는 길을 찾으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입니다."고기양단(叩其兩端)"은 말 그대로 '날뛰는 소의 두 뿔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그 어려움을 피하거나 도망가지 말고, 오히려 직접 그 어려움에 맞서서 해결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공자는 우리가 문제나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직접 잡아서 극복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공자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로, 적극적인 자세와 용기를 강조하며, 공포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음가짐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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