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책점이라고 하는 것은 뭘 하는 기관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세책점'이라고 하는 곳은 어떤 것을 하는 기관이었나요?
세책점이 생겨나게 된 시기와 그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책가(貰冊家)[1]은 조선 후기의 도서대여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2. 배경[편집]
조선 초기에는 한반도에 민간 서점이나 공공도서관과 비슷한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고 민간 서점이 등장한것은 조선중기의 일이었다. 물론, 향교와 서원을 비롯한 주요 교육시설에서는 책을 다량으로 갖춰놓을 필요는 있었기 때문에 각 향교와 서원에서 도서시설을 갖추어놓았기는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대의 학교 부속 도서관과 비슷한 개념으로 존재한것이었고, 권세가 혹은 이름있는 명문가, 혹은 지역 관청과 규모있는 절 차원에서 목판 인쇄를 통해 책을 인쇄하기도 했으나[2] 이것이 민간서점의 발흥으로 곧바로 이어진것은 아니었다. 유교라는 학문을 국시(國是)로 삼아 신진사대부 계층이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일반 백성들을 통치하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는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서적은 국가 주도 하에 인쇄한 것을 교서관을 통해 지방 관청과 교육기관으로 배포되었거나, "책쾌"라고 불리던 책장수(서적 도매상)가 그때그때 필요한 서적들을 수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중앙 정부에서 배포한 서적의 경우 무료이거나 염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발행량이 적어 어느 정도 이름난 가문이나 지방 관청 선까지만 베포되었으며, 책쾌를 통해 서적을 구매하자니 일반인 입장에서 가격이 매우 부담되는 수준이었다는 단점이 있었다.[3] 이러한 공급의 부족은 비용 문제에서 기인하였다. 지금이야 기계로 생산한 종이를 가지고 상당히 저렴하게 책을 찍어낼 수 있지만 당시 장인들이 수공업으로 제작하던 한지는 저렴할 수가 없었으며,[4] 비효율적인[5] 인쇄 공정은 필연적으로 비용의 상승을 이끌었다.
그러다 보니 교서관에서 발행, 판매하는 서책으로 민간의 수요를 총족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서점을 만들자는 상소가 나오곤 했으나, 그때마다 정승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필요성을 못느끼지는 않았지만, 책을 굳이 돈벌이 대상으로 상아야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다만 실록의 기록을 보면 1551년 명종대에 민간서점의 개점을 허용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며, 임진왜란 직후에 남원에 세워진 박고서사 등 민간서점이 있었으리라고 짐작되는 기록들은 여럿있지만 서점의 세가 확장된것은 영조대의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도서대여점도 등장하게 되었는데, 일명 "세책가"였다. 세책가는 18세기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일제 시대까지 존속하였다.
참고로 19세기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서점은 지방에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세책가는 한양일대에 집중되어있었다고 한다.
출처:나무위키 세책가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책점(貰冊店) 책 빌려주는곳
세책점은 대부분 주인이 직접 경영 합니다 대여료로 책값의 10분의 1이나 2문(文)을 받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책점은 소설을 필사해 책값의 10분의 1정도의 금액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곳이었습니다.
17세기 후반 도시를 중심으로 소설 읽기 문화가 형성되면서 소설책을 사고팔거나 빌려보는 시대가 열렸으며 이에 세책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책점은 조선 후기에 생겨난 서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곳입니다. 춘향전, 홍길동전 같은 한글 소설, 번역한 중국 소설 등을 그대로 베껴서 만든 책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세책점은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주로 서당을 가지 못하던 여성들이 책을 많이 빌려 보았고 특히 한글 소설 등이 많이 읽히다 보니 한글의 자연스러운 배포에도 도움이 많이 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책가(貰冊家)[1]은 조선 후기의 도서대여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2. 배경[편집]. 조선 초기에는 한반도에 민간 서점이나 공공도서관과 비슷한 시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한반도에 민간 서점이나 공공도서관과 비슷한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고 민간 서점이 등장한것은 조선중기의 일이었다. 물론, 향교와 서원을 비롯한 주요 교육시설에서는 책을 다량으로 갖춰놓을 필요는 있었기 때문에 각 향교와 서원에서 도서시설을 갖추어놓았기는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대의 학교 부속 도서관과 비슷한 개념으로 존재한것이었고, 권세가 혹은 이름있는 명문가, 혹은 지역 관청과 규모있는 절 차원에서 목판 인쇄를 통해 책을 인쇄하기도 했으나 이것이 민간서점의 발흥으로 곧바로 이어진것은 아니었다. 유교라는 학문을 국시(國是)로 삼아 신진사대부 계층이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일반 백성들을 통치하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는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서적은 국가 주도 하에 인쇄한 것을 교서관을 통해 지방 관청과 교육기관으로 배포되었거나, "책쾌"라고 불리던 책장수(서적 도매상)가 그때그때 필요한 서적들을 수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