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예지력과 관련된 일화가 궁금합니다.
여성 상위시대가 아닌, 왕권 사회에서 여왕이 주는 의미는 큽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예지력이 뛰어 났다고 합니다. 그와 관련된 설화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첫번째 일화가 향기 없는 모란꽃입니다.
당나라 태종이 보내온 모란꽃 그림과 모란꽃씨가 있었는데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에 나비나 벌이 없음을 보고 모란꽃에는 향기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란꽃씨를 심으니 정말 역시나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어떻게 맞추었냐고하니 꽃그림에 나비가 없어서였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곧 자신을 풍자한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일화 개구리 이야기입니다.
겨울에 겨울잠을 자고 있을 개구리가 3~4일을 계속울어대자 그곳에 적군이 숨어있다는 징조임을 알고 군사들을 풀어 그곳을 뒤지게 하자 과연 백제군이 숨어있어 물리쳤다고합니다. 개구리 이야기는 옥문곡에서 백제군을 물리쳤다고합니다.
세 번째 일화는 여왕이 병도 없을 때인데 모든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이 되면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 가운데 장사지내라.” 신하들은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 물었지요. “도리천중이란 장소가 어디입니까?”, “낭산(狼山)의 남쪽이다.” 이런 예언을 했는데, 그 예언한 날짜가 되자 여왕은 병도 앓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래 설화를 소개시켜드립니다.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의 이야기다
본명은 덕만으로 진평왕의 따님이다 선덕여왕이 제위기간동안 앞일을 미리 예지력을 발휘하여 예견한일이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첫번째는 당나라 태종이 붉은빛과 자주빛 흰빛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를 함께 보내온일이 있다 그때 선덕여왕은 그림의 꽃을 보고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꽃일거다 그러나 꽃이 아름다우니 궁정 뜰에다 심으러 명 했다 그후 그 씨에서 싹이나고 자라서 화려한 꽃은 피었으나 선덕여왕이 여견한대로 향기는 도무지 나지를 않았다
두번째의 일은 영묘사(경주 성진리 강가에 있는절이름)옥문지에 겨울인데도 수 많은 개구리때가 모여들어 울어대었다 이일을 기이하게 생각한 선덕여왕 에게 그 연유를 물어 왔다그 물음에 여왕은 급히 각간, 알천,필탄등에게 명하여 정병 2천명을 대리고 서교로 가서
여근곡을 수색하면 틀림없이 적군이 숨어 있을것이니 이들을 습격하여 죽이라 명을 내렸다
이에 두 각간이 명령을 받고 군사 일천씩을 대리고 서교에 가보니 부산기슭에 과연 여근곡이 있으며 그곳에 백제군사가 숨어있는것이었다
또한 백제 장수 오소라는 장수가 남산 바위뒤에 숨어 있으므로 포위하여 장수를 활로서
죽이고 숨어있는 백제군을 섬멸했다고 한다
세번째의 일은 이렇다
왕이 아주 건강하게 정사를 돌보든중에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무날 아무시에 죽을것이니 도리천에 장사지내달라 말했다
신하들은 믿기지 않아서 도리천이 어디냐고 반문하자 이에 왕은 낭산 남쪽에 도리천이 있다고 말을 하였다 그후 왕이 말한 아무날 아무시가 왔을때 왕은 예언대로 죽음을 맞으므로 신하들이 왕의 유언대로 낭산 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다
그후 10여년후 문무대왕이 사천 왕사를 선덕여왕의 무덤아래에 창건을 했는데 불경에 사천왕천(불교에서 말하는 육계 육천중 제 1계)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여왕의 신령함과 성스러움을 알수 있었다 한다
여왕의 생존시에 신하들이 묻기를 어찌하여 모란꽃에 향기가 없는줄 알며 개구리울음이 적군의 내습임을 알았는지 물었다
이에 여왕은 모란꽃의 그림에 나비가 날지 않음으로 향기가 없는 꽃인줄 알았으며
이것은 당나라 태종이 내가 짝이 없음을 은근히 빗대어 풍자함이요
개구리의 울음은 개구리의 성난 형상은 군사의 형상이며 옥문이란 여자의 음부인데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백색이며 백색은 곳 서쪽을 의미하므로 적의 군사가 서쪽에 있음을 알았고 또한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필시 죽게되니 우리가 쉽게 이길줄을 알았다 대답을 하였다
이와같이 선덕여왕은 성스러움과 예지력을 갖이고 신라를 다스렸던 성군이었다고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편에 기록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 중 선덕왕지기삼사 셋째 기록으로
셋째, 왕이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여러 신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짐은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지내라'
여러 신하들이 그곳을 몰라 다시 어디인지를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 남쪽이다'
그 달 그 날이 되자 왕은 과연 세상을 떠났다. 여러 신하들이 낭산의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사천왕사를 왕의 무덤 아래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때서야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덕여왕의 예지력 가운데서 여근곡
설화는 신라 깊숙이 침투하여 서울을
기습하려고 매복해 있던 백제군을
물리친 것이 오로지 여왕의 예지력에
힘입었음을 강조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