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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바티칸을 통해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 신자가 줄고, 1870년 이탈리아 왕국에 직할 영토를 빼앗기고 교황권은 끝없는 추락을 보였습니다. 1922년 교황이 된 비오 11세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 바티칸을 떠 맡았습니다. 그는 1929년 무솔리니와 라테란 조약을 체결하여 막대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치와도 협력하여 독일의 카톨릭 정당 해산에 협력합니다. 그 대가로 독일이 걷은 교회세의 상당액을 받았습니다. 나치가 패망할 무렵 바티칸은 점범들을 빼돌리고 수수료를 챙깁니다.
또한 나치도 1933년 교황-라이히 협약을 통해 바티칸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또한 바티칸과 협력을 통해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바티칸의 약화와 전체주의자들과 세력 확대 및 권력 유지 의도가 두 세력의 협력을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