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을 축공할때, 거중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실용성이 있나?는 식의 회의론도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거중기가 사용되었는지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거중기와 활차 등 근대적 기기를 사용했고 팔달문과 장안문, 서장대, 화홍문, 공심돈 등 조선 시대 절정의 건축 문화의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중기는 1792년 수원화성 에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중기가 크레인과 같이 성벽을 쌓는데 사용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채석장의 석재같은 자재를 수레 에 싣고 나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화성 축성시에 거중기,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 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정조대왕이 실학자 정약용에게 성의 축조를 맡겼고 정약용은 당시로서는 첨단기구인 거중기와 녹로를 이용하여 불과 2년 만에 수원화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중기는 정약의 고안과 건의한 복합 도르래 시스템으로 1792년 수원 화성 건설에 기여했습니다. 이 기계는 <화성성역의궤>에 설계도가 실려 있습니다.
거중기는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4개의 도르래를 수평으로 연결하고 아래 도르래 밑으로 물체를 달아매고 위쪽 도르래의 양쪽을 잡아당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