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수원 화성을 축성할때, 실제로 거중기가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수원 화성을 축공할때, 거중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실용성이 있나?는 식의 회의론도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거중기가 사용되었는지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거중기와 활차 등 근대적 기기를 사용했고 팔달문과 장안문, 서장대, 화홍문, 공심돈 등 조선 시대 절정의 건축 문화의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중기는 1792년 수원화성 에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중기가 크레인과 같이 성벽을 쌓는데 사용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채석장의 석재같은 자재를 수레 에 싣고 나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화성 축성시에 거중기,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 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정조대왕이 실학자 정약용에게 성의 축조를 맡겼고 정약용은 당시로서는 첨단기구인 거중기와 녹로를 이용하여 불과 2년 만에 수원화성을 축조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중기는 정약의 고안과 건의한 복합 도르래 시스템으로 1792년 수원 화성 건설에 기여했습니다. 이 기계는 <화성성역의궤>에 설계도가 실려 있습니다.

      거중기는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4개의 도르래를 수평으로 연결하고 아래 도르래 밑으로 물체를 달아매고 위쪽 도르래의 양쪽을 잡아당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