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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페퍼민트22.08.14

조선이 불교 국가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번창했었고, 조선시대의 여러 국왕들이 유교보다 불교를 믿었음에도 조선이 불교 국가가 되지 못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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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고려 후기 불교의 타락에서 기인합니다. 불교가 세속화하고 이익을 탐해 농민경제가 어려움에 빠지곤 했습니다. 단적으로 사원은 상업활동에도 매진했는데 술과 고기를 파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한 사원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많은 노비를 두어 경작하여 토지소융의 모순이 심화되었습니다. 농민들은 소작료를 이중삼중으로 나라에 한번 사원에 한번 왕족어 한번 이런식으로 내야했는데 피폐함이 극으로 달해가고 있었으니,

    조선을 건국하는 신진사대부의 사상이 성리학이며 불교의 폐단을 목도하여 철저히 조선은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국가로 만들려 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유교 지식인들이 창업의 설계자였습니다. 따라서 이들로 하여금 건국의 이념과 운영 원리를 제시하게 했죠. 그로 인해 명의 성리학을 추종하던 그 세력들이 당시 조선이 처한 정치·외교·경제적 현실을 고려하여 숭유억불(崇儒抑佛) ·중농주의(重農主義) ·사대교린(事大交隣) 의 세 가지 통치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불교가 크게 번창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중 바로 숭유억불 정책에 있습니다. 불교는 오랫동안 고려의 정신과 종교 생활을 지배해왔지만 지나치게 커져 국가 재정을 약화시켰습니다. 또 고려 말에 심하게 부패해 국가의 주 이념으로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정도전을 필두로 한 성리학자들이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써 성리학(유학)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무인이었지만 조선을 문치주의 국가로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유교를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려 했죠. 따라서 주자학 중심의 참모들은 성리학의 정립을 위해 불교를 반대하였습니다. 불교 자체는 물론이고 불교와 연결된 귀족 세력도 함께 탄압했고 많은 불교 사원을 정리하여 종단에 귀속된 토지와 노비를 국가 소유로 바꾸었습니다. 세금과 군역을 피해 스스로 승려가 되었던 양민들도 불교에 대한 핍박을 피해 승려를 포기하였습니다. 이처럼 숭유억불 정책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통치 이념 실현과 함께 국가 재정 강화에도 기여했습니다.


    불교는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 같은 훌륭한 유산을 남겼으나 권력화되어 부패하였고 조선의 건국 밎 통치 이념과 거리가 멀고 그 통치 주축이 대부분 성리학자들이다 보니 왕이 불교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취향으로 인정할 뿐 통치 이념이 되는 국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사실상 조선의 건국 이념 자체가 불교를 '고려라는 국가를 망하게 한 사상적 근원'으로 치부하여 부정하고(정도전이 [ 불씨잡변 ] 저서를 통해 더욱 비판하였지요.) 유교 사상을 근간으로 개국하였기 때문에 국왕 개개인들이 불교를 믿었음에도 정식 불교 국가는 되지 못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림 집권 이후에는 사실상 더더욱 불가능해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