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과 유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성리학이 유교의 일종이라고 하지만
공자의 유교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적지만 어느정도의 다른 것들이 생겼을 것 같은데
성리학은 공자의 유교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혹시 작은 차이도 없는 건가요?
성리학과 유교는 완전히 똑같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른 종교에 관해 어느정도 아신다면
유교의 여러 종파중 하나가 성리학이라고 이해하시면 될거 같습니다
종교에 관해 잘 모르신다면
공자의 말씀을 따르는 유교라는 큰 틀은 성명학이던 성리학이던 다 같은데
말씀의 해석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고대 유교는 분서갱유라던가 문화대혁명 같은 기록말살정책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공자님 살아있던 시절의 유교는 "주나라" 라는 엄청 좋았던 나라를 재현 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후에도 성악설로 대표되는 순자의 해석이 주류로 있었는데 이 시기를 선진 유학 이라고 합니다
분서갱유후에 훈고학 이라는, 연구고 뭐고 일단 박살난 경전들 복원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그 후 삼국지 시기때부턴 기록이 좀 남아있는데
동탁같은 자들이 날뛰면서 유학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자, 노자나 장자 같은 도가사상을 흡수하고
청의사상(청빈함을 중요시) 중앙집권 저항, 허례허식의 탈피 같은 특징을 가진 현학이 정립됩니다
이 현학에서 발전된 것이 바로 성리학으로
성리학은 "리"라는 절대 진리 같은게 있다고 생각 했는데 현실이 리를 잘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각각 물체마다 발현방식= '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한때 무시당했던 맹자 계열의 사상을 되살려 좀더 엄격한 규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구요
주희라는 사람이 성리학을 완성했다고 주자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재에 전해지는 유교의 대부분은 이때의 물건들이죠
하지만 이런 성리학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기들 만의 세상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도움도 안되는 이론적인 연구는 때려 치고 실천이나 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왕수인이라는 명나라의 학자로, 그의 호인 양명을 따서 양명학이 만들어 졌습니다.
중국에서는 꽤나 유행했고, 한국에서도 강화학파라고 해서 학파 하나쯤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실천에 너무 치중하다 둘로 분열해서 싸우다 비교적 금방 망해버렸습니다
그후 명말청초에 고증학 이라고, 다시 정치나 사회전체 같은 큰 그림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학파가 나왔고
청나라 말기에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개혁파인 공양학이 등장했는데
이 둘이 생겼을땐 이미 중화사상이 망할때 쯤이라서 다른나라까지 영향을 주지 못했고
문화혁명때 기록이 박살나서 한국에선 별로 연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리학은 불교와 도교에서 왔는데 세계의 법칙, 섭리아 인간사회가 서로 맞물린다는 세계관입니다.
그래서 유교는 사람으로서 가야할 하나의 지향점을 나타낸다고 한다면, 성리학은 세계의 법칙이기 때문에 꼭 따라야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나라는 제사를 꼭 지내야하고 이게 곧 따라야 하는 세계의 법칙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과 후손들이 잘 될 수 있는 기운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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