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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쿠스쿠스162
선량한쿠스쿠스16222.03.31

노인과 바다, 허무주의가 바탕에 있다..?

노인과 바다 전반에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있다라는 해석이 대부분인데요

어떤 부분이 허무주의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

바다와 자연의 묘사

노인의 사투 긍지 의지

소년의 존경과 사랑

읽으면서 결과나 상태와 상관없이

삶에 대해 놀라울만큼 생생한 태도

저와 너무 대조적이라 느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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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에 썼습니다.

    2009년 8월 제가 플로리다에 있는 끝 섬, 키웨스트로 가서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여기에 살았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태어난 고향이 아니지만,

    <노인과 바다> 작품을 쓴 쿠바를 그리워하며 미국 땅 중에서 가장 쿠바와 가까운 이 섬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합니다.

    "나는 이 상을 받은 최조의 입양 쿠바인이다. 나는 그래서 행복하다"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수상 소감은 참 독특했습니다.

    그 전 해인, 1953년에는 퓰리쳐상을 수상했었죠.

    1939년부터 20년간 쿠바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탈고했죠.

    그에게는 두번째 고향도 있는데, 바로 스페인입니다.

    1936년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세계 지식인 5만여명이 몰려와 참전하게 된 전쟁이고, 헤밍웨이도 거기 있었습니다. 함께 이 전쟁에 참전한 지식인 중에는 까뮈,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피카소, 조지 오웰, 파블로 네루다, 생떽쥐베리, 쇼스타코비치, 로버트 카파, 존 도스 파쏘스, 존 콘포드 등, 이들은 국제여단(International Brigades)으로 파시즘에 반대한 문화예술가들이었습니다.

    1938년 헤밍웨이의 모습입니다.

    스페인내전 참전지식인들은 스페인 공화파연립정부의 부패와 무능력에 전쟁참전을 후회하게 됩니다.

    지식인들이 총을 들었다가, 파시즘에 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돕고자 했던 공화파의 부패와 무능을 경험하는 것은 큰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노인과 바다>는 사실을 근거로 쓴 것입니다.

    그레고리오 푸엔테는 헤밍웨이보다 오래 살았는데요.

    104세까지 살다가 200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헤밍웨이보다 2살 연상으로, 헤밍웨이에게 53일동안 한 마리도 못 잡다가, 큼직한 6마리를 잡았는데, 돌아 오던 해상에서 상어를 만나 모두 잃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고,

    헤밍웨이가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하자,

    돈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지금 술 한 잔만 사달라고 하며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헤밍웨이는 푸엔테를 찾아와 2만달러, 노동자의 7년치 급여로 집 2채를 살 수 있는 돈을 건넸고,

    정색하며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던지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헤밍웨이는 61세에 미국정부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다가 권총 자살합니다.

    그의 자살때문에 그의 작품이 허무주의로 읽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문자님은 잘 읽으셨다고 생각됩니다.

    소설의 말미에는 노인은 침대에 두 팔을 벌리고 지친 몸을 누입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구원자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전쟁과 정치의 이면을 경험한 헤밍웨이와 국제여단의 지식인들은 엄청난 갈등을 어떻게든 작품화해야했을 것입니다.

    84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물고기였는데,

    다시 바다로 나가야하는 것이 어부 노인의 삶이겠죠.

    그리고 잡은 큰 놈 하나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어쩌면 헤밍웨이가 스페인으로 가서 총을 들고 적과 싸운 이유이겠지요.

    그러나 그 인생은 상어 두 마리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앙상한 뼈만 남습니다.

    노인의 손도 상처투성이이죠. 그 옆엔 노인을 바라보며 펑펑 울어주는 소년도 등장합니다.

    "나를 살게 해 주는 건 그 아이야!"

    "상어의 뼈가 저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고 감탄하는 관광객의 말 속에 헤밍웨이는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의 아이러니를 꾹꾹 눌러 담아놓은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헤밍웨이는 노인을 통해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쳐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게 되겠지요.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서 총을 들었던 이유, 파시즘을 반대한 그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헤밍웨이는 쿠바 땅에서 이 작품을 쓰면서,

    자신이 태어난 곳이지만, 인정할 수 없는 조국 미국이 인간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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