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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泰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단릉이다. 태릉은 왕후의 단릉이지만, 능역이 넓고 석상의 규모도 매우 크며 병풍석을 갖추었다. 중종의 곁에 묻히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도성의 동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동쪽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강릉이 뒤이어 자리 잡았다. 이를 합하여 태강릉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는 1517년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의 계비로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45년에 명종(明宗, 1534~1567, 재위 1545~1567)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주1하였다.
1565년 4월 6일 문정왕후가 창덕궁 소덕당에서 승하하자, 명종은 문정왕후의 상례를 대왕의 예로 갖추도록 명하였다.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묻히려는 의지를 강력히 나타내었다. 중종의 정릉(靖陵)은 본래 장경왕후(章敬王后, 1491~1515)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고양군에 있었으나, 1562년에 문정왕후의 주장으로 광주 선릉(宣陵) 곁으로 천릉하였다.
새로 조성된 정릉은 지대가 낮아 장마철마다 강이 범람하여 침수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능호를 신정릉(新靖陵)이라 정하고 중종 곁에 능침을 마련하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막상 구덩이를 파 보니 넓고 깊게 돌이 박혀 뽑아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곳을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
명종은 도성의 동쪽으로 10리쯤 거리에 있는 대방동(大方洞)이 거리도 가깝고 후손이 번성할 곳이라 하여 택하였다.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의 곁에 묻히지 못하고 도성의 동쪽 노원면 대방동에 단릉으로 자리 잡고 능호를 태릉이라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