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때 포항 학도병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625 전쟁 때 포항 학도병에 대해서 궁금증이 있는데 왜 학생들이 이렇게 무참히 싸우다가 목숨을 잃게 됐는지 학도병의 모든 것들이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학도병(學徒兵)은 국가의 학생들을 징집한 병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학생은 대부분 고등학생 이하의 10대 어린 소년들이기 때문에 징집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리적으로 크나큰 문제를 가졌기도 하지만 국제법 상의 문제도 있어 설령 전쟁에서 이긴 국가라 하더라도 미성년자를 강제로 징집한 후폭풍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를 징집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자국민의 저항과 종전 후 국제사회에 국가 지도층을 전범으로 고발하는 학도병 피해자들 등. 인권이라는 개념이 문명화된 사회라면 강력하게 작용하는 현대 사회에서 학도병은 국가 입장에서 또한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당장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쟁 중인 시리아에서조차 소년병들은 무장단체들에게서만 볼 수 있을 뿐 정부군이 미성년자들을 강제로 징집하지 않는다. 이는 소년병과도 연결되는 점이다.
학도병을 징집하지 않는 추가적인 이유가 있는데, 과거 한국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상실할 경우 손해가 큰 고급 인적자원인 대학생에게도 병역면제 혜택을 준 시기가 있었다. 이는 서구권도 비슷해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석박사급 인력들이 단순 징발로 말단 병사나 수병이 되어 참호에서 갈려나간 뒤 이 후유증이 컸던 관계로,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이공계 고급인력이나 숙련공 등에게 많은 대체복무의 길을 열었다.
이와 같이 나이나 학력 때문에 징병 대상이 되지 않았던 학생들이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지원에 의해 군대에 참여한 것을 학도병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소년병으로 군대에 지원한 한국 청소년들을 가리켜 학도의용군이라고도 하며, 일제강점기에 징집하던 학도병은 아예 학병으로 줄여 별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사 서적에서 학병은 일본군 참여자, 학도병은 한국군 참여자로 구분하면 쉽다.
또한 학도병,학병은 공통적으로 대국민 총력전을 독려하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애들도 총잡고 나라 위해서 싸우는데 부끄럽지 않냐.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싸우자!" 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소재로 사용된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좀 더 발전하면 패전 직전의 독일처럼 여자와 노인도 병사로 끌어들인다.출처: 나무위키 학도병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25 전쟁 당시 포항 학도병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에서 학도병이라는 허명나애 전쟁에 휘말린 소년들 이야기 같습니다. 이 학도병은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 그 이하의 소년들이 학생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한 것인데요. 내용도 잘 모른채 하루 세끼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학도병들은 훈련을 배울 기회도 없이 전쟁터에 내몰린 채 소총을 들어야했습니다. 1950년 8월 정규군이 떠난 포항에서 71명의 학도병들은 11시간 가량의 긴 시간 동안 북한군과 치열한 전두를 벌였고 그들의 희생이 낙동강을 사수하는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에 북한 군인이 쳐들어오고 국군은 다른데서 싸우기 바쁘고 자신을 몸을 바쳐 이웃과 친구 주민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ㅏ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