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당시 외국과 먼저 통상을 시작한 청나라는 여러가지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크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은 유교에 입각한 중화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서양 오랑캐들이 물질 문명과 사상에 대해서 탐탁치 않아 했습니다. 그것은 봉건주의에 입각한 조선의 지배층을 뒤흔들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농공상의 끄트머리인 상인 세력이 커져서 나라를 좌지우지 한다면? 신분체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지요.
때문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