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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05.24

무신정권 때 이의민은 어떻게 권력을 장악할 수가 있었나요?

고려시대 무신정권 때는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지만

그중에서도 이의민은 천민 출신인데도

어떻게 권력을 잡을 수가 있었나요?

아무리 혼란한 시기라해도 신분을 넘어서기는 힘들었을 것인데 천민출신의 이의민이 권력을

잡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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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관 정선. 아버지는 소금장수, 어머니는 옥령사(玉靈寺)의 노비였다. 천민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하여 안찰사(按察使) 김자양(金子陽)에게 발탁되어 경군(京軍)에 편입되었다. 수박(手搏)을 잘 하여 의종의 총애를 받아 별장(別將)이 되었다. 1170(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이어 장군에 승진하였다. 1173년(명종 3) 김보당(金甫當)·장순석(張純錫) 등의 의종 복위음모를 평정한 공으로 대장군이 되었다.

    이듬해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여 상장군에 올랐다. 1179년 경대승(慶大升)이 정중부를 죽이자 그를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고향 경주에 은거해 있었다. 경대승이 죽자 명종은 이의민이 경주에서 난을 일으킬까 도읍으로 불러들였다. 공부상서(工部尙書)·수사공좌복야(守司空左僕射)를 거쳐, 1190년 동중서문하평장사 판병부사(同中書門下平章事判兵部事)에 이르렀다. 참위설(讖緯說)을 믿고 역모(逆謀)할 뜻으로 명사들을 포섭하고 적도(賊徒) 김사미(金沙彌)·효심(孝心) 등과 은밀히 결탁하였으며, 벼슬을 팔고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였다. 아들들도 아버지의 권세에 의지하여 탐학을 자행했다. 아들 이지영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비둘기를 빼앗은 것이 계기가 되어 미타산(彌陀山) 별장에서 최충헌(崔忠獻)에게 살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의민 [李義旼]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무신정권은 고려시대에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한 시기로, 이의민은 그 중 하나입니다. 이의민은 출신이 천민이었지만 무신으로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과 배경이 있었습니다.

    1. 무신의 지지: 이의민은 무신들의 지지와 동포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무신들은 천민 출신인 이의민을 자신들의 대표로 삼아 지지하고 협력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2. 무신의 역할: 무신들은 기자로서 군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그들은 고려 왕실과 군사에 대한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무신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의민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3. 사회적 동요와 혼란: 무신정권 시기는 국가적인 혼란과 사회적 동요가 심각했습니다. 왕실과 양반들 간의 갈등, 외적 침입, 전쟁 등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권력의 변동과 조직의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의민과 같은 신분이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4. 외부 지원과 동맹: 이의민은 외부와의 동맹과 지원을 활용하여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의민은 황건적인 친목을 유지하며 황건적의 지원과 동맹을 활용하여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과 배경들이 이의민이라는 천민 출신 인물이 무신정권 시기에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고려시기 무신들은 주먹의 세계라 할 수 있을만큼 출신성분보다는 누가 더 남자답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보니

    모든 일에 앞장서서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던 이의민이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3년부터 1196년까지 13년 동안 고려 왕조의 실권을 맡았다고 합니다. 한꺼번에 갑자기 권력을 잡게 된것은 아니고 1170년 정중부의 난에 가담하여 장군으로 승진했고, 이의방의 명령으로 의종의 유배지로 찾아가 의종을 암살했으며 1173년 반 무신 운동인 김보당의 난,진압하여 대장군이 되고, 그 후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상장군이 되었습니다. 경대승이 갑작스럽게 죽자 집권하였다고 합니다. 1196년 4월 8일 미타산(彌陀山) 별장에서 말을 타려할 때 문 밖에서 대기하던 최충헌, 최충수 형제 등이 일으킨 군사에게 향년 40세에 살해되었다고 합니다.그가 살해될 때 최충헌은 조정의 문신들 38명을 함께 살해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