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건국의 주축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이에 자연스럽게 그에 기반한 유학 사상을 들여왔습니다. 과거 불교가 융성하였던 고려시대에 불교가 세속화되고, 나라의 재정을 위태롭게 할 만큼의 문제가 발생했었기에 그 명분으로 유학을 기본 통치 사상으로 하여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것이 종교화되어 유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고려말 신돈의 이야기로 당시 불교의 폐해를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죠)
사실 공민왕의 신임으로 개혁사상가로 시작하여 권력의 최상위에 올랐던 승려 신돈과 실권을 잃어 반격을 노리던 권문세가의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권문세가가 승리하며, 신돈을 요망한 승려로 기록되게 하였지요. 신돈이 후반기로 가면서 순수한 개혁가의 정신이 퇴색되어 권력에 취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에 종교가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불교 사원은 건축도 제한되고, 실생활에서 멀어져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국에 유학 사상이 불교 사상을 밀어내고 조선시대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조선 건국의 주축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불교가 융성하는 일이 없어야 함으로 미리부터 싹을 잘라내기 위해 숭유억불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