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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대군이 세자 책봉을 거부한 이유는 형인 소현세자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자 자리를 탐했다고 하면,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에서는 일어날 수없는 일이며, 이후 왕위 정통성에도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봉림대군이 올린 상소의 일부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어리석고 불초하여 뭐 하나 쳐줄 만한 것도 없는 위인이 집에 있으면서 봉록만 먹는지라, 항상 그 과실이 위로 성명(聖明)의 걱정을 끼치게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않게 천만 뜻밖으로 갑자기 신을 세자의 자리에 올리시는 전교를 내리시니, 신은 가슴을 치도록 망극하여 몸둘 곳이 없어서 밤낮을 쉬지 않고 놀라 부르짖어 울다가, 이렇게 궁박한 정황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므로, 부득이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번거롭게 말씀을 드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 세자(先世子) 가 오랫동안 동궁에 있다가 이제 막 서거하였고, 원손의 칭호는 온 나라 사람이 우러러 아는 바입니다. 신이 만분의 일이나마 중대한 왕위(王位)의 부탁을 감당할 자격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감히 명분을 초월하여 그 자리에 대신 나아가 담당할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오늘날이 어느 때이며 신이 어떤 사람입니까. " -<조선왕조실록> 인조 23년 윤 6월 4일(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