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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쌍7214
한알쌍721423.04.21

을사조역을 위해 참석한 신하 5명은 누구인가요?

우리나라를 집어 삼킨 강제로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은

고종은 강렬히 반대했지만 일본 편에 든 다섯명은 누구인가요?

제가 알고 있기에는 이완용 또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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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 박제순(朴齊純, 외부대신), 이지용(李址鎔, 내부대신), 이근택(李根澤, 군부대신), 이완용(李完用, 학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농상부대신)을 일컫는다.

    조선 말기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무력행사를 통해 청나라 세력을 꺾고(청일전쟁, 1894), 다음의 경쟁 세력인 러시아를 러일전쟁(1904. 2)으로 격파한 다음, 미국, 영국 등 열강들과 침략 상호 묵인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는 조선의 실질적 침략인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주조선일본군사령관인 하세가와[長谷川好道]를 대동하고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어전회의에 참석한 각료들을 강압적으로 압박하여 조약에 찬성할 것을 강요하였다. 고종은 건강상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대신들이 찬성을 하였다. 참정대신 한규설은 반대하고 임금께 고하러 가다가 졸도까지 하였다. 당시 총 9명의 대신 가운데, 5명의 대신은 약간의 내용 수정을 한 다음에 최종 찬성하고 서명하였다. 그들은 박제순(朴齊純, 외부대신), 이지용(李址鎔, 내부대신), 이근택(李根澤, 군부대신), 이완용(李完用, 학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농상부대신)으로서, 조국을 왜적에게 팔아먹은 매국노(賣國奴)라하여 역사상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이라 칭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을사오적 [乙巳五賊]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나라를 팔아 자신들의 영화를 선택한 다섯 명의 인물을 을사오적(乙巳五賊).

    대한제국 때, 을사늑약에 찬동한 다섯 매국노를 말합니다.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나라를 팔고 자신들은 일본으로부터 귀족작위를 받고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 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조약에 찬성을 한 인물로는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의 5명이 조약체결에 찬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를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불립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조약은 1876년 4월 26일에 체결되었으며, 당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조약에 서명한

    다섯 명의 대한제국 대사는 이를 지지하였습니다.

    다섯 명의 대한제국 대사는 각각 김영모, 홍영식, 박영효, 이승영, 이완용입니다.

    이완용은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으로 파견되었던 인사로, 청나라와의 외교적 협상 과정에서 일본의 개입을 불러일으키는 등

    의문제를 일으켜 왔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던 이완용은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이에 찬성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으로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입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토히로부미는 러일전쟁이 마무리가 되어 갈 쯤 조선으로 와서

    고종을 만나고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이 통제한다고 조약을 체결 할 것을

    겁박합니다. 그 이유는 조선은 오랜기간 동안 청국의 속국이었으므로 현재의

    강대국들의 외교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조선에 외교권이 있으면

    청일, 러일전쟁과 같이 동양평화를 해치는 전쟁이 반복해서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였지요. 뻔뻔하기가 이를 때가 없습니다. 전쟁은 자신들이

    일으켜 놓고 우리 때문이라니 고종은 끝까지 반대하였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물러날 위인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대신회의에서 결정하라고 이야기 하였고 대신들에게 잘 결정하라 라는 말을 남깁니다.

    이때 대신들도 부담이 많았었을 것입니다. 참 약한 나라인게 한 스럽습니다.

    참석한 대신들은 한규석, 이지용, 이하영, 권중현, 이근택, 민영기, 박제순

    이중에 을사조약에 참석한 대신은 내부대신 이지용,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 외부대신 박제순

    이었습니다. 정말 다시는 반복되서는 안될 역사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정말 현 사태를 잘 헤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