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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ngel
Youangel24.03.31

안익태 작곡가의 친일 행적은 무엇인지?

안녕하세요 안익태 작곡가가 애국가의 창시자인데요 친일행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데요 어떠한 친일행적이 있었는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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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익태는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 참여하여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자신의 작곡한 '만주환상곡'을 지휘하며 축하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에키타이 안'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며 일본 사회에 적응하려 했습니다. 작곡활동을 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며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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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

    1942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자작곡 '만주환상곡'을 지휘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용의 작곡을 하고 지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의 가사가 친일파 윤치호가 작사한 것이라는 논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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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익태가 일본 지휘자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 영상’은 이미 2006년 밝혀져 논란이 됐던 것인데 당시 독일 유학생이었던 송병욱이 음악잡지 ‘객석’를 통해 이 영상을 공개했고 안익태 친일 행적을 대표하는 자료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이 영상에서 안익태는 일본인이 쓴 가사에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만주국 환상곡’을 작곡해 이를 직접 지휘했는데 이 곡엔 안익태 애국심의 상징이던 ‘한국 환상곡’의 선율까지 인용돼 있어 당시 100주년의 분위기를 급랭시켰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 하지만 누구나에게 이중적인 면이 있듯이 안익태 에게는 애국적인 면도 동시에 존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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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3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본인 지인 등과 함께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 담긴 문건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가 공개한 문건은 일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가 1952년 음악잡지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안익태군의 편모(片貌)’라는 글이다. 에하라는 안익태의 후원자로 알려졌다.


    그는 이 글에서 “1942년 가을, 나는 공무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있었다”며 “명치절 아침 일본 공사관 의식에 참여했다. 그곳에 기미가요 제창 때 피아노를 연주하는 흰 넥타이를 맨 청년이 있었다. 마르고 큰 키에 호감을 갖게 하는 인상이었다. 식후에 그가 당시 유럽에 유학 중인 지휘자 겸 작곡가 안익태군이라고 소개를 받았다”고 썼다.


    이 교수는 “1942년이라는 연도는 에하라의 착오이거나 오타로 보인다”며 “이 글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1941년이 맞다”고 분석했다. 에하라가 같은 글에서 “독일·소련전쟁이 시작되던 해부터 그와 함께 살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독소전쟁은 1941년 시작했다. 1942년은 안익태가 이미 베를린의 에하라 집에서 함께 기거했던 시기다. 안익태가 당시 연주한 기미가요는 일본 ‘천황’의 통치가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곡으로 지금도 일본 국가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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