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 후 조선은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고 후금과는
거리를 두는 ‘친명배금’의 입장을 취합니다.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던 후금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안을 수밖에 없었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 정묘호란입니다.
정묘호란 때에 맺은 화약에 불만을 품은 후금은
1636년 2월 국호를 청이라 고치고 사절단을 보내 칭제건원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으나
조선은 이를 거부하고 사신의 참소를 요구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1637년 1월 병자호란이 발발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