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왕릉은 도굴되지 않았나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왕릉은 많이 도굴되어서 왕릉 안에 있는 유물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왕릉은 도굴되지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왕릉은 다른 왕조의 능과는 달리 아직까지 무덤 내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는 왕릉 제례를 맡은 전주 이씨 종약원에서 발굴에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일부 왕릉은 전쟁이나 도굴 등으로 파괴되거나 훼손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조선시대 왕릉은 잘 보존되어 있어, 현재까지도 많은 왕릉과 그 안의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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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도굴되었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1860년대에도 오페르트호 도굴사건이라고 해서
미국인들이 왕족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걸려서 처형당한 적이 있어요
일제시대엔 더 심해서 신라왕릉부터 조선왕릉까지 엄청 많이 털렸구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릉은 조선시대에는 조정이 엄격히 관리했고 일제강점기 기간 및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중요히 다뤄 관리했습니다.
또한 시신을 안치한 석실에 석회를 두텁게 바른 회곽묘이기 때문에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나 폭약 없이 소수 인력이 단시간에 몰래 파들어갔다 빠지는 식의 도굴이 불가능했고 검약을 강조한 유교 윤리에 따라 진귀한 부장품을 가져다 묻은 이전왕조에 달리 비교적 도굴할 가치가 없는 물건들일 뿐이라 도굴꾼들이 자기 목숨을 걸고 공격할 동기 또한 부족해 왕릉 강역 주변이 훼손될뿐 왕릉 자체는 보존되었습니다.
구한말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벌어지나 석회에 막혔고 2007년 서오릉 순창원도 당시 자행된 도굴 시도 역시 두터운 석회벽에 막혀 미수에 그쳤습니다.
조선왕릉 도굴 성공 사례는 다수의 인력을 눈치 볼 것 없이 동원할수 있었던 선정릉 도굴 사건이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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