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명성황후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사실상 한 나라의 최고 지위(국모)로써, 임오군란 등을 야기했다는 점, 결국 을미사변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시해 당함으로써 조선의 국세가 사실상 기울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우며, 단 정확하게 낭비벽이 아주 심했고, 나라가 안중에도 없었다라고 보는 것은 약간 비약이지 않을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민비가 낭비벽이 심하고 못된 여자로 이야기하는것은 너무 비약된 이야기인것 같네요 민비는 스스로 학문을 깨우칠정도로 매우 똑똑한 여자였지요. 다만 우리나라에 전봉준이 난을 일으켰을때 남편인 고종에게 일본 군대에 도움을 요청하라해서 고종은 일본군대를 통하여 전봉준의 동학란을 진압했지만 일본은 돈을 요구했으나 고종은 돈이 없어 일본군에게 궁의 경비를 맡겼지요 그후 일본의 간섭이 심해지자 중국에 군대를 파견해달라는 민비의 말이 일본군에 발각되어 민비가 살해되고 이씨조선이 망한것입니다 고종은 참으로 한심한 왕이었던거죠
사실 임오군란은 명성황후 개인에게 원인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신식군대의 출현과 구식군인에 대한 차별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개화파와 이를 지원하는 민씨세력에 대한 반발이 복합되어 일어난 것입니다. 민씨세력은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친러 친미 외교노선을 채택하여 일본의 만행으로 살해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당시는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정국이었음을 감안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