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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08

조선시대 삼포왜란은 어떠한 왜란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가장 큰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임진왜란 이전에 일어났던 삼포왜란은 어떠한 성격의 외란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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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10년 삼포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중종의 엄격한 통제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입니다.

    조선은 나라를 세운 후 무질서하게 조선으로 들어오는 왜인 통제를 위해 3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 이 3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의 내왕을 허락합니다.

    중종이 즉위 후 엄격한 법규 시행으로 왜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이전까지 면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왔던 왜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대마도주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1510년 난을 일으켰고 이들은 이 지역에서 약탈, 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 이 과정에서 부산포 첨사 이우증이 살해 되는 등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 즉시 황형을 경상좌도방어사로, 유담년을 경상우도방어사로 임명해 삼포의 폭동을 진압, 이 난으로 조선 측은 군민 270여명이 살해되고 일본 측은 290여명이 죽거나 사로잡혔습니다.

    조정은 왜란을 진압 후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진휼하는 한편 삼포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왜인들을 추방하여 이를 계기로 삼포는 통교가 끊겼으나 일본이 다시 수교할 것을 간청하며 1512년 임신약조 체결, 내이포만이 개항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포는 지금의 동래의 부산포(釜山浦), 진해 웅천(熊川)의 제포(薺浦), 그리고

    울산(蔚山)의 염포(鹽浦)를 말합니다.

    삼포왜란은 15일 만에 진압되었으며,

    전투의 결과 조선측은 272명의 전사자를 냈고, 796호의 집이 불탔으며,

    일본측은 선박 5척이 소실되고 295명이 사망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10년(중종5) 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 등 삼포(三浦)에서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난이다. 조선은 나라를 세운 후 무질서하게 조선으로 들어오는 왜인 통제를 위해 3포(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3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의 내왕을 허락했다.


    그러다 중종이 즉위한 후 엄격한 법규 시행으로 왜인들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자, 이전까지 면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왔던 왜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대마도주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1510년(중종 5)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약탈ㆍ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산포 첨사 이우증이 살해되는 등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즉시 황형을 경상좌도방어사로, 유담년을 경상우도방어사로 임명하여 삼포의 폭동을 진압하였다. 이 난으로 조선 측은 군민 270여 명이 살해되고, 일본 측은 290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혔다.


    그리고 조정은 왜란을 진압한 이후에는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진휼하는 한편 삼포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왜인들을 추방하였다. 이 삼포왜란을 계기로 삼포는 폐쇄되어 통교가 끊겼으나, 일본이 다시 수교할 것을 간청하면서 1512년 임신약조(壬申約條)가 체결됐고, 내이포만이 개항됐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