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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쟁 패배 이후 절충적 개혁인 양무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이 중심이 되어 정치, 교육, 법 등 청나라 사회전반의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운동.
무술변법(戊戌變法)이라고도 한다. 청일전쟁 패전과 그에 따른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중국 분할로, 젊은 독서인층(讀書人層)은 망국의 위기감을 절감하였다. 그들은 패전의 경험에서, 유럽의 무기·기술만을 도입하려는 양무운동(洋務運動)의 한계를 깨닫고, 전통적인 정치체제·교육제도 개혁으로서 부국강병을 실현해야만 중국이 근대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헌법제정, 국회개설, 과거제(科擧制) 개혁과 양식학교(洋式學校) 설립, 산업의 보호육성 등을 구체적 목표로 정하고, 주요도시에 학교를 설립하고, 신문을 발행하여, 관료나 독서인층을 대상으로 계몽·선전활동을 펼쳤다. 외국인 선교사와 일부 고관들 중에도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어, 고관들의 후원으로 캉유웨이는 황제에게 의견을 구신할 기회를 얻었다. 황제는 그의 의견에 공명하여 량치차오·담사동(譚嗣同) 등 변법파(變法派)를 등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서태후(西太后)의 쿠데타(무술정변)로 좌절되고,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는 망명하였다. 20세기에 헌법제정·국회개설을 목표로 한 입헌(立憲)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청조타도(淸朝打倒)·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한 쑨원[孫文] 등의 혁명운동이 활발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변법자강운동 [變法自彊運動]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