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은 어떻게 춘화를 그릴 수 있었나요?
조선시대 궁중화가인 신윤복님은 어떻게 춘화를 거리낌없이 그렸었나요? 보통 성과 관련된 그림이 엄격해서 평민들도 그리거나 보는것이 금지됐었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궁중화가가 그릴 수 있었던 건가요??
신윤복(1758~1813 이후)은 춘화를 그린 게 들통 나 궁중 도화서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윤복의 개성 넘치는 풍속화는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구환의 '청구화사'에는 20대의 신윤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떠돌면서 살았으며(東家食西家宿), 마치 이방인 같았고(似彷佛方外人), 항간의 사람들과 가까웠다(交結閭巷人)."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 "신윤복이 협사(狹斜·유흥가) 즉 색주가의 이속지사(俚俗之事·풍속화)를 즐겨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9년 평론가 문일평의 '호암전집'은 당시 구전을 인용해 "신윤복이 너무 비속한 것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궁중화가 중 한 명으로, 춘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대부분의 그림이 엄격한 틀 안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춘화와 같이 대중적인 소재는 거리낌 없이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윤복은 춘화를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데 능하였으며,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춘화를 그리면서도 기존의 춘화와는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어, 궁중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윤복은 춘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감성과 색채감을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들은 궁중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었고, 신윤복의 그림 그리기 스타일은 조선 후기의 궁중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신윤복은 자신만의 그림 그리기 스타일과 감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춘화를 거리낌 없이 그릴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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