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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3

조선시대에 간도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한반도 내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간도에 대해서도 조선 정부에서 지방관을 파견하여 관리하였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간도는 어느 정도 되는 영역이며 언제부터 그렇게 관리하였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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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9세기 말,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정계비에 쓰여진 "토문"을 서로 달리 해석하면서 이 지역(동간도)에 대한 귀속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당시 조선은 정계비의 위치상 '토문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이다'고 주장하였고, 1903년에는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하여 간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은 1883년에 '월강금지령'을 폐지하고 어윤중·김우식에게 정계비와 그 주변 지형을 조사하게 하여 송화강의 한 지류로 토문강이 있음을 확인한 뒤, 간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양국의 기본적인 국경선이 두만강이라는 전제하에 도문과 토문은 모두 만주어에서 그 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취한 것(借字, 차자)이므로 '토문은 곧 두만강을 지칭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조선과 청나라는 을유년(1885년)과 정해년(1887년)에 백두산과 그 동쪽의 국경을 명확히 획정하기 위한 감계회담을 가졌으나, 서로의 주장이 엇갈려 모두 결렬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은 1907년 8월 23일, 간도에 헌병과 경찰을 들여보내 용정에 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였으나,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이 지역에 대한 청나라의 법적 권한을 인정하고 파출소를 철수하였다고 합니다.

    1962년 10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조중 변계 조약을 체결하여 백두산과 두만강 상류의 국경선을 명확히 획정하고, 두만강 이북 지역에 대한 영토권이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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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굴뚝새46
    노란굴뚝새4623.09.03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도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위쪽의 만주지역으로 조선은 여진을 몰아내고 4군 6진을 설치하여 다스려온 지역이었으나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위를 인정받는 댓가로 일제가 청나라에 양도한 것으로 우리나라 땅을 권한도 없는 놈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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