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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은 1920년에 있었던 봉오동 전투 이후 독립운동단체가 흑룡강의 국경지대에 집결하자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부총재가 되었습니다. 대한독립군단은 1921년 러시아령(領) 자유시(알렉세예브스크)로 이동하여 스랍스케 부근에 주둔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소련 당국의 한국독립군에 대한 무장해제령으로 빚어진 자유시사변(自由市事變)을 통하여 많은 독립군이 희생되었습니다. 이후 홍범도장군은 남은 독립군 부대와 함께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였고, 레닌 정부의 협조를 얻어 설립된 고려혁명군관학교에서 혁명군 양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22년에는 다시 연해주 이만으로 돌아왔으며, 1923~24년 무렵부터는 그곳에서 콜호스(집단농장)를 차려 농사를 지으며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1937년 스탈린이 한인강제이주정책을 시행하면서 연해주의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의 야니쿠르간 사나리크로 이주했다가, 이듬해 크질오르다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