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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비둘기23.07.05

과거에는 신체는 부모님이 주신것이라는 의미로 머리도 자르지 않았는데 어느시점 어떤이유로 사람들이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나요?

지금 헤어스타일은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수단중의 하나로 인식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로 돌아가보면 머리를자르는것을 엄청난불효로 생각하여 다들 상투를트고다녔었습니다.

그런데 고종황제의 사진을 보면 단정히 이발은 한모습을 확인할수있는데요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게된 시점과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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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단발령을

    시행할 때 천황이 먼저 머리를 자르자

    다들 이를 따라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위에서 선례를 보여주기

    위해 일단 고종과 태자(순종), 그리고

    내각의 신하들이 반쯤은 강제로 상투를 잘랐습니다.

    그 후 상투보다는 단정하고 짧은 머리가 위생적이고 일상에서 작업 효율을 높여준다고 하며 전 국민에게 머리를 깎을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 32년(1895), 백성들에게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내린 명령. 김홍집(金弘集) 내각은 을미사변(1895) 이후 내정개혁에 주력하였는데, 조선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건양 원년(建陽元年) 1월 1일로 하여 양력을 채용하는 동시에 전국에 단발령을 내렸다. 고종도 먼저 모범을 보이게 하기 위해 단발을 하였으며, 내부대신 유길준(兪吉濬)은 고시를 내려 관리들로 하여금 강제로 백성들의 머리를 깎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머리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선비들은 “손발은 자를지언정 두발(頭髮)은 자를 수 없다.”고 분개하여 정부가 강행하려는 단발령에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출처 : 문화원형 용어사전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4년 일제는 동학농민운동을 강제로 진압하고서구화를 위한 여러 요구를 해왔는데 이를 갑오개혁 또는 갑오경장으로 2년간에 걸쳐 실시됩니다. 그 중 단발령을 시행하고자 하여 우리 선조들은 내 목을 칠지언정 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다고(신체발부 수지부모) 하여 죽음으로 저항하였으나 끝내는 머리카락을 잘리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발령(斷髮令)은 조선 후기에 두 차례 공포된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내용의 칙령이다. 1895년과 1900년 두 차례 행해졌으나 보통 단발령이라 하면 큰 반발이 있었던 1895년 1차 단발령을 의미한다.

    실록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내부(內部)에서 고시(告示)하기를,

    "이제 단발(斷髮)은 양생(養生)에 유익하고 일하는 데에 편리하기 때문에 우리 성상 폐하(聖上陛下)가 정치 개혁과 민국(民國)의 부강을 도모하며 솔선궁행(率先躬行)하여 표준을 보인 것이다. 무릇 우리 대조선국(大朝鮮國) 민인(民人)은 이러한 성상(聖上)의 뜻을 우러러 받들되 의관 제도(衣冠制度)는 아래와 같이 고시(告示)한다.

    1. 나라의 상사(喪事)를 당하였으니 의관(衣冠)은 나라의 거상 기간에는 그전대로 백색(白色)을 쓴다.

    2. 망건(網巾)은 폐지한다.

    3. 의복 제도는 외국 제도를 채용하여도 무방하다."

    하였다.

    -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음력 11월 15일 신해 9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