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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스라소니93
유능한스라소니9322.08.30

고려시대 삼별초의 저항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삼별초는 어떤 무력집단이었고 몽고에 저항해서 어떤 방법으로 저항 했는지 또 어떤 전투 여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최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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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별초는 진도의 관문인 벽파진에서 중군을 막는데 주력을 했지만 삼별초가 중군을 대적하는 동안 좌군과 우군이 배후와 측면에서 공격을 당해 진도 정권이 수립한지 9개월만에 함락 당하여 혼란에 빠진 삼별초는 멸망 당하였고 배중손은 진도 남도 진성에서 전사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별초는 고려시대인 1219년에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후 야별초가 규모가 커져 좌별초, 우별초로 나뉘고 몽골 병사와 싸우다 포로가 됐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이 합쳐져 삼별초가 됐습니다.

    초반에는 무신정권의 사병으로 쓰이다가 항몽전에서는 유격전술을 통해 몽골을 괴롭혔습니다.

    고려가 몽골과 강화하며 개경으로 환도했을 때 삼별초만은 끝까지 항쟁했으며 진도,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몽골과 싸웠습니다.

    고려정권이 몽골과 화친하고 무신정권이 무너지자 삼별초를 해산시키려 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삼별초가 '삼별초의 난'을 일으겼으나 1273년 여원연합군(고려+원나라)에 의해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육아·아동/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삼별초 : 끝까지 몽골에 대항한 최씨 무신 정권이 고용한 군인

    최씨 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는 몽골과의 강화에 반대하여 배중손을 중심으로 강화, 진도, 제주로 이동하면서 몽골에 항전 하였습니다.

    * 삼별초 저항

    - 왕과 신하들은 모두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최씨 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는 끝까지 반대하도 몽골에 저항 했습니다. 배중손을 중심으로 새로운 왕을 뽑고, 관리도 뽑아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싸우던 이들은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배를 타고 전라남도 진도를 근거지로 옮겨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진도가 함락되고 배중손이 죽자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옮겨 항쟁을 시작합니다. 고려와 몽골 연합군이 제주도에 모여 들었고, 삼별초는 있는 힘을 다했으나 결국 진압 되었습니다. 김통정은 부하 70여 명과 함께 한라산에서 목숨을 끊었으며 삼졀초의 저항은 4년만에 진압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이었습니다. 좌별초와 우별초에 야별초가 더해져 삼별초라 불리웠습니다. 최씨무신정권이 실권하고 조정이 몽고와 강화하고 개경으로 옮기자 삼별초는 몽고와 조정에 항거하였습니다. 강화도에서 싸우다 진도로 옮겨 항쟁을 벌였는데 배중손이 지휘했습니다. 마지막 항거지는 제주도에서 이루어졌는데, 김통정이 지휘하였습니다. 삼별초는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되고, 제주도는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어 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매를 원에서 공물로 요구해 매를 키우고 잡아 원에 보내는 일이 탐라에서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