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수림왕은 지배층들이 공통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기에 즉위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구체제의 잔재를 일소하고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체제로 정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불교를 도입하고 태학을 설립하였습니다.
고구려에는 태진으로부터 승려 순도가 불상과 경문을 가져오면서 불교가 전래되었습니다. 이후 승려 아도가 왔습니다. 미천왕대 후조와의 교류나 낙랑·대방지역의 편입 등을 계기로 불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전진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고국원왕이 전사하면서 백제와의 전쟁이 더욱 빈번하고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므로 서쪽 국경의 안정은 필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전진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인 것도 그와 같은 외교행위의 일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이다. 다른 하나는 북조불교의 호국사상이 필요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불교도입 이전까지는 여전히 각 정치집단별로 전해 내려온 다양한 재래신앙이 고구려인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어서 의식적으로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외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자 국가공동체의식을 새롭게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국민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고차원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체계이면서 국왕 중심의 호국불교인 북조불교를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