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일제의 항복 선언에 기쁘게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 선언에 기쁘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와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김구 주석은 미국의 OSS와 협정을 체결하고 국내 정진을 위해 광복군의 일부를 선발하여 국내 정진군을 조직하고 특수훈련을 이수했니다. 미군이 한반도 수복하기 위해 미리 선발대로 선점하여 국내로 정진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1945년 8월 20일 독수리 작전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전을 수행하기도 전에 일제가 항복하여 실현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김구 주석은 해방된 나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역할 문제로 발언권이 제한될 우려에 대해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다라고 여겼습니다. 결국 임시정부는 김구 주석의 우려대로 광복후 미소군정으로 부터 외면받았으며 계획한 건국준비도 배제될 수 밖에 없엇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 광복군사령부에 집중투자하여 항공대원들을 양성하고 조국 광복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승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일제의 갑작스러운 항복선언으로 한국에 대한 주도권이 임시정부가 아닌 연합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는 이후에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미소공동위원에의 결정으로 한국인은 자치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국과 소련에 의한 5개년 신탁통치가 결정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