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흑립은 어떤 의미로 쓰게 된건가요?
흑립과 같은 갓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상징인데요.
조선시대에서는 흑립이 대표적인데 흑립은 어떤 의미로 썼던 건가요?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갓을 안썼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갓의 시초는 삼국시대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신라 입형백화피모 모자나, 고구려 감신총 벽화에 등장하는 패랭이를 쓴 인물, 원성왕이 꿈에 복두를 벗고 소립을 썼다는 삼국유사의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통해 갓의 존재시기와 기원을 추정할수 있습니다.
흑립은 과거 한국 남성이 썼던 모자 중 하나로, 그 형태는 조선시대에 정립되었습니다.
망건과 함께 말총을 꼬아 만들었으며 대부분의 조선시대 양반이 하나씩 꼭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래 갓의 실질적 용도는 햇빛을 막는 데 썼고 이후 재료,형태 , 제작법이 다양화되어가면서 점차적으로 사회적 위치를 알리는 등의 사회성을 지닌 복장이 되었습니다. 흑립도 그 중 하나로 고려시대 말 부터 패랭이에서부터 시작해 초립 등의 형태를 거친 뒤 사람들이 아는 모습의 흑립이 만들어졌으며, 사대부 뿐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사용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고려시대에도 갓을 썼습니다. 원래 갓은 삼국시대부터 햇빛을 가리기 위해 썼는데, 조선 중기부터 우리가 아는 갓의 형태로 정립됩니다.
고려시대는 관리들의 관모로 제정됨으로써 신분이나 관직을 나타내는 사회적 의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공민왕이 원나라 관습을 타파하고 고려 고유의 의복체계를 도입하려고 1357년(공민왕 6)에 문무백관에게 갓을 쓰도록 한 것인데, 이어 1367년 7월에는 아문(衙門)의 정3품 이하 관원들에게 각기 품수에 따라 백옥·청옥·수정 등으로 장식된 흑립을 착용하도록 하면서 입니다. 또한, 1374년 4월에는 재상(宰相)·중방(重房)·각문(閣門)이 모두 갓을 착용하도록 하였는데, 그때의 갓은 재료나 제작기술상 조선시대의 흑립과는 다르나 형태는 패랭이형일 것입니다.
조선의 갓은 고려말 패랭이·초립의 단계를 거쳐 흑립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태종 때 한때 백관들이 갓을 쓰고 궁궐에 출입한 적이 있었으나, “조로(朝路)에 우설일(雨雪日)이 아닌데도 대소관리(大小官吏)가 착립(着笠)하고 있어 미편(未便)하다.”고 하여, 이듬해부터 조정에서는 사모(紗帽)를 쓰게 되고 갓은 편복(便服)에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했던 관모 중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흑립은 사대부들 뿐만아니라 서민층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