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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갈매기201
조그만갈매기20123.11.21

일본의 대표음식인 초밥은 어떻게 발전한건가요?

흔히들 오마카세라하여 스시오마카세가 우리나라에서도 엄청 유행중인데 스시문화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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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일찍이부터 수산물을 즐겨 먹었으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초밥은 에도시대 중기에 그 전형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창기의 초밥은 나레즈시라 불리는 요리로 지금의 날생선을 밥 위에 얹어 먹는 초밥과는 다른 생선 발표식품이었고 , 이런식으로 생선을 발효시켜 섭취하는 방식은 쌀과생선이 같이 입수되는 지역에서 다소의 기간 차이를 두고 자연스럽게 발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금이 귀했던 과거 농경민족들에게 생선을 장기 보관하기 위한 두번째 옵션은 자연스럽게 곡물이 되기 때문인데 옛 기준으로 밥을 버리는 것이 사치였으므로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 발효를 중간에 멈추고 밥을 같이 먹는 방버이 등장하는데 이를 나마나레라고 부르며 완전 발효시켜 생선만 먹는 혼나레와 구분하기 시작, 여기서 생선과 밥을 같이 먹는다는 초밥의 방향성이 처음으로 정해졌습니다.

    무로마치 시대 들어 시각적 감각을 중시하는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에서 초밥의 발전이 일어나는데 틀에 밥을 깔고 그 위에 다양한 발효생선을 넣은 후 꽉 눌러 판화처럼 만드는 하코즈시가 등장, 아직 냉장기술이 미숙했으므로 싱싱한 날생선은 잘 사용하지 않았고 거기에 밥은 소금으로만 간을 해 짭짤하고 신맛은 도리어 생선이 담당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쿰쿰히 올라오는 비린내를 잡기 위해 와사비를 넣었고, 당시 와사비는 귀족들만이 먹을 수 있더 고가품이라 대중적인 집에서는 아예 빼거나 겨자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에도시대 정권의 중심지가 에도로 옮겨가고 에도 막부는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개발된지 비교적 얼마 되지 ㅇ낳은 에도를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해 온갖 직공들을 초대하고 다이묘들을 참근교대 제도로 번갈아가며 에도에 강제로 불러들였습니다.

    식사를 만들 여유가 없는 직공과 다이묘의 수행원들로 가득찬 에도에서 빠르게 대량의 식사를 게종하기 위한 야타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초밥도 당연히 한몫 자리잡아 패스트 푸드가 됩니다.

    다만 생선을 발효시키는 시간이 너무 길어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에도는 바다가 가까워 날 생선이 빨리 들어온다는 점을 이용해 발효 생략 대신 식초를 부어 생산속도를 높인 초밥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합니다 . 이렇게 만드는 초밥을 빠르게 만든다는 뜻에서 하야즈시라 불렀고, 1700년대부터 스시는 발효시간을 줄이고 식초의 첨가량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 결국 발효를 전혀 하지 않은 스시가 탄생하게 됩니다.

    여기세 일일이 틀에 찍어내는 대신 즉석에서 손으로 쥐어주는 니기리즈시가 탄생, 비좁은 야타이에서 초밥틀을 치워버리자 공간 활용도 편해지고 생산 속도도 빨라졌으며, 현대적인 초밥의 역사는 여기서 부터 시작이라 볼수 있습니다.

    이때를 분세이시대로 추정, 일설에는 료고쿠라는 요리점의 하나야 요헤에라는 사람이 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설, 에도에 올라온 어떤 다이묘가 자꾸 초밥을 내놓으라며 조리사를 괴롭혀 열 받아 만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밥은 일본 문화이 상징이자 고급 식사로 모두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초밥의 기원은 제일 처음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느데 생선과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오래 생선을 보관 하기 위한 방법 에서 생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