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 증식 계획(1920-1934)은 일제가 1차 대전으로 공업화가 추진되면서 도시 인구가 급증하고 식량 사정이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1918년에는 쌀폭동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일제는 이에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에서 쌀을 증식하여 가져오려는 게획을 추진했습니다.
쌀 증식을 위해 일제는 개간과 간척을 통해 경지를 늘리고, 품종개량, 비료 보급, 저수지 확대 등을 시행했습니다.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은 증식되었으나 목표한 만큼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계획한 만큼 수탈하면서 한국인들의 식량 사정은 점차 악화되었으며,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여 만주산 잡곡을 수입하여 유통시켰습니다.
그리고 수리조합비, 종자비, 비료 대금 등 증식 비용을 소작농에게 전가하면서 한국 농민들의 처지는 더욱 어렵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