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까지만 해도 50페니히(유로화 이전 구 독일의 화폐단위. 1마르크=100페니히)면 살 수 있었던 빵 한 덩이 가격이 1923년 11월에는 천억 마르크였으니 말이다. 당시 환율은 1달러에 4조 마르크였으며 이조차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경제가 나빠진 것이 하루아침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커피 한 잔을 산 뒤 다 마셨을 즈음에는 가격이 두 배가 되어 있었다. 돈의 가치는 지폐를 찍는 종이 값도 되지 못했다. 물물교환이 확산되었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머리를 자르고 달걀로 지불하는가 하면 석탄을 주고 영화 티켓을 받았다. 거리에는 거지들이 우글거렸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1920년 이후 독일에서는 월간 기준으로 물가가 50% 이상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인데 연구에 의하면 1차대전 이후 독일의 물가 상승율은 1조 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런 살인적, 전무후무한 인플레로 중앙은행권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망가졌으며, 사람들은 월급을 받는 즉시 현물을 사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나갔고 힘들게 일해 받은 월급의 가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독일인들은 돈의 가치을 부정하고 돈으로 된 모든 형태의 부와 고정수입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근로의욕이 사라지고 저축욕구, 미래에 대한 희망등을 버리면서 경제도 붕괴됐고 1923년 독일의 산업생산은 1914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홍성택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세계1차대전 이후 독일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극도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약 2년간 독일 마르크 통화의 가치는 급격하게 하락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독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1조%에 이르렀으며, 가격은 하루에도 수십억 배씩 상승했습니다. 이는 독일의 경제와 사회에 막대한 파괴를 초래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독일의 경제적인 불안과 정치적인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