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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23.05.30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어떤관계인가요?

백제가 위험에 처할때 일본이 와서 도와준 기록도 있고 백제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해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두 국가가 어떤관계였길래 도움을 준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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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군신관계였습니다.

    백제가 고구려와 신라를 상대로 대치하고 있었던 상황 때문입니다. 백제는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는 대신에 고구려와 신라와 대적 할 수 있도록 일본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백제의 요청으로 군사를 파견하거나 식량, 말, 무기 등을 지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백제와 일본은 서로의 필요에 따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5세기에서 6세기 다양한 이유로 일본에 건너간 도래인들은 선진기술과 학문을 일본에 전파하여 일본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당시 일본 문화가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출처 - 지식백과 도래인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가 일본으로 유교 및 불교를 전파하는 등 많은 영향을 준 국가입니다. 일본 문화와 종교에 큰 영향을 준 국가가 백제라서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종교, 예술, 건축 분야에서 일본 문화와 역사의 다양한 측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국가가 백제라서 백제 부흥 운동(백강전투) 때도 일본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당 연합의 승리였지만, 백제와 일본의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주로 『니혼쇼키(일본서기)』에 있는데 일본측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라 다소간의 과장은 있지만 그것을 감안해서 읽는다면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원전 제시합니다.

    (진구코고) 46년 봄 3월 을해(乙亥) 초하루 사마숙녜(斯摩宿禰)를 탁순국(卓淳國)에 보내었다. 이 때 탁순왕(卓淳王) 말금(末錦) 한기(旱岐)가 사마숙녜에게 “갑자년(甲子年) 7월에 백제인 구저(久氐)·미주류(彌州流)·막고(莫古) 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백제왕이 동방에 일본이라는 귀한 나라가 있음을 듣고 우리들을 보내어 그 나라에 조공하게 했습니다.’라 하였다.”

    『니혼쇼키(일본서기 日本書紀)』 권9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기장족희존 氣長足姬尊) 진구코고(신공황후 神功皇后)」

    47년 여름 4월 백제왕이 구저·미주류·막고를 보내어 조공하게 했다. (중략) 두 나라의 공물을 조사하였더니 신라의 공물은 진기한 것이 매우 많았는데, 백제의 공물은 적고 천하여 좋지 않았다. 이에 구저 등에게 “백제의 공물이 신라에 미치지 못하니 어찌된 것이냐”고 물었다. (중략) 이 때 (왜국) 황태후와 (왜국 태자) 예전별존(譽田別尊)이 신라 사신을 책망하고 천신(天神)에게 기도하여 말했다.

    “누구를 백제에 파견하여 일의 사실 여부를 조사시키며, 누구를 신라에 파견하여 그 죄를 물으면 좋겠습니까”.

    『니혼쇼키』 권9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 진구코고」

    49년 봄 3월 황전별(荒田別)과 록아별(鹿我別)을 장군으로 삼아 구저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중략) 곧 목라근자(木羅斤資)와 사사노궤(沙沙奴跪)에게(이 두 사람은 그 姓을 모르는데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 장군이다) 정병(精兵)을 이끌고 사백(沙白)·개로(蓋盧)와 함께 가도록 명하였다. (중략)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古奚津)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백제왕 초고(肖古)와 왕자 귀수(貴須)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중략) 백제왕 부자(父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의류촌(지금은 주류수기(州流須祇)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千熊長彦)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辟支山)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니혼쇼키』 권9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 진구코고」

    와코쿠(왜국) 즉 일본 입장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자뻑' 성향을 감안하고 걸러서 보면 와코쿠는 친백제, 반신라의 자세를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와코쿠는 일관되게 친가야, 반신라였는데 백제와 가야의 관계가 나쁘지 않은 반면 가야와 신라의 관계는 나빴기 때문에 와코쿠가 백제를 좋게 본 것 같습니다. 이후 백제는 가야를 대신해 와코쿠에게 문화 및 문명을 전수하게 되지요.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