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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사일러스23.02.24

고려 시대의 동북9성은 지금의 어느 지역인가요?

고려 시대에 윤관이 여진족을 토벌하면서, 동북 9성을 세웠다고 배웠지만, 동북9성 자체는 그다지 비중있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위치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은데, 지금의 어느 지역이고, 왜 여진족에게 9성을 반환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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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북9성은 이름만 남아있고,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동북 9성은 여진족 지역에 위치해 있어 계속된 여진족의 침략과, 방어하기 쉽지 않은 점, 그리고 여진족이 돌려주기를 간청하기에 돌려 주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직도 잘못된 채 교과서에 나오는 고려 윤관의 9성의 위치


    결론적으로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려 9성 위치가 맞다.



    1107년(예종 2)은 고구려 이래의 우리 민족의 영토가



    다시 두만강 이북 만주까지 확장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해다.



    윤관(尹瓘)이 동북면의 여진을 물리치고 9성을 설치한 때문이다.



    이때 윤관은 여진 정벌 후 선춘령에 고려의 영토 확장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



    이 비는 ‘윤관비(尹瓘碑)’ ‘선춘령비(先春嶺碑)’라고 불렸다.



    윤관의 9성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이다.



    이 중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실린 윤관의 9성은



    북청이남설(北靑以南說)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북청이남설은 '일본인 이케우치(池內宏)의 견해'이다.(포인트는 일단 우리나라 사람 학설이 아님.)



    이 설은 현재 정설로 되어 있고, 역사 교과서도 이 설에 근거하고 있다.



    즉, 윤관이 개척한 범위는 함흥평야에 해당되며,



    그 구성은 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는 함흥,



    영주성은 함경남도 신흥군 동흥리에 있는 산성,



    길주성은 함경남도 함흥군 산대리에 있는 산성,



    복주성은 함흥군 탑동리에 있는 산성,



    웅주성은 함흥군 퇴조면 신동리에 있는 산성,



    공험진성은 함흥군 대덕리에 있는 산성,



    통태진은 함흥군 운성리에 있는 산성,



    숭녕진은 함흥군 운흥리에 있는 중봉 산성,



    진양진은 함흥군 오로리에 있는 금반산성이라고 한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동북 9성은 현재의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해당합니다. 각 동북 9성의 이름은 "강화성, 의릉성, 선릉성, 낙양성, 도산성, 평양성, 양주성, 청원성, 진천성"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윤관이 여진족을 물리친 뒤 동북쪽 지역에 세운 9개의 성인데, 이는 위치가 어디인지 기록이 확실하지 않아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옛 기록에 따르면 함주, 영주, 웅주, 복주, 길주, 통태진, 숭녕진, 공험진 등에 성을 쌓았다고 하나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동북9성 축조 후 여진족은 고려에 조공을 약속하며 동북 9성 반환을 요청하여 고려는 이를 수락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민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에 윤관이 여진족을 물리친 뒤 동북쪽 지역에 세운 9개의 성입니다. 동북 9성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기록이 확실하지 않아 여러 견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옛 기록에 따르면 함주, 영주, 웅주, 복주, 길주, 통태진, 숭녕진, 진양진, 공험진 등에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전해질 뿐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동북 9성은 여진족의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리가 힘들었습니다. 성을 쌓은 뒤에도 여진족의 공격이 계속되어 국경을 지키는 일까지 힘들어진 것. 때마침 여진족이 화친을 맺고 성을 돌려주면 조공을 바치겠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에 고려 조정은 이전처럼 여진족과 군신 관계를 맺는 것을 조건으로 성을 돌려주고 말았죠. 이로 인해 동북 9성은 강동 6주와 달리 고려의 영토가 되지 못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윤관은 1623년(광해군 11년)에 조선과 여진족 사이의 정계를 정리하고 안정을 취하기 위해, 특히 여진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동북 9성(東北九城)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이 9성은 현재 중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북 9성의 위치는 실제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일부 사료들에 따르면, 현재 중국 랴오닝성 둥화시와 그 주변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윤관이 건설했던 동북 9성은 당시 조선과 여진족 간의 휴전 조약에서 여진족에게 넘겨줄 조건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와 윤관은 이 조건을 어기고 여진족에게 9성을 반환하지 않고 점령하여 보존하게 됩니다. 이후, 동북 9성은 조선과 여진족의 접전 지대로 여러 차례 싸움의 장소가 되었고, 결국 여진족과 조선의 간섭 속에서 고창왕궁의 쇄신과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