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세에 목욕탕은 많았는데 주로 빵 굽는 가마 위에 목욕탕이이 있었고 위생시설이자 오락과 교류의 장으로 ,빈민들은 부자들의 기부를 통해 이용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중세 후기로 들면서 매독과 매춘굴화로 쇠퇴하게 됩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들은 튀르키예식 목욕을 전파해 발전시켰기 때문에 중세의 공중목욕탕에는 한증탕이 따로 설치되었으며 중세인들은 씻기 전 먼저 몸에 증기를 쐬고 나무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갔습니다.
중세의 공중목욕탕은 혼탕이었는데 중세의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매춘이 성행하게 됩니다.
중세 후기 물로 씻는 일반적인 목욕 대신 사우나가 보급되고 증기 목욕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욕은 청결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보다 일종의 사치로 여겨졌고 중세 말에 들어 목욕탕은 비위생적인 관리로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몸을 씻지 않는 풍습이 생겨나며 몰락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