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백두산을 푸대접 하는 이유가 뭘까요?
고려 건국한 지 불과 30년도 안된 3대왕 정종 때 ,
서기로는 946년
백두산이 폭발 했다는 것
어마 어마한 힘으로 폼페이 영화처럼 폭발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요새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시절 국사 시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사건입니다.
백두산 분화구의 규모로 짐작하여도 엄청난 자연 재해였을 텐데요
이 부분의 기록도 조금은 남아 있는 듯 하고요
그런데 왜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해서 역사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 일까요?
과학적인 탐사도 없는 듯하고 영화의 소재로도 문학 예술적 소재로도 다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수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백두산 폭발에 대해
국사 시간에 다루지 않은 건 분명 우리나라 교과서계의 큰 실책일텐데,
현재까지도 일본에 의해 왜곡된 부분의 영향이 많은
현 교과서의 태생부터가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껏 백두산은 대중들에게 거의 무관심의 영역에 있었으며
조금씩 백두산을 다룬 서적들도 나오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가 원하는 백두산 조사와 연구를 중국이 가로막고 있으며,
백두산이란 이름조차 빼앗으려고 금기어로 만든 뒤 장백산이라 칭한
백두산 연구를 1990년부터 시작해 2000년대부터 독점한 뒤
국제적으로 백두산의 이름을 지운 채 백두산공정을 노골화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중국과 북한등 국제정세가 관련된 소재이지만
앞으로 많이 미디어로 백두산자락의 우리나라 땅에 대한
권리를 다루고 알려야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일단 백두산 폭발설은 정설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발해의 갑작스런 멸망이 백두산 화산 폭발과 관련성이 제기되었던 것 정도입니다. 이는 일본 사서에도 언급이 되었지만, 발해의 자체 역사서가 없었고, 고려 시대에 백두산은 고려영토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백두산은 조선 세종 대 개척하여 비로소 조선영토가 됩니다. 조선초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고려에 대한 역사서가 편찬되기는 했으나 이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위한 것이었기에 고려를 매우 부정적으로 그린 데다가 언급했듯이 백두산이 고려영토가 아니라 다루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참고로 고려의 대체적인 영토경계선은 서로는 청천강에서 동으로 영흥만으로 되어있습니다.
아무쪼록 제 답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