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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22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어떤 내용으로 되어있는지요?

신라 성덕왕 때에 승려 혜초가 쓴 여행기고 세계에서 유일하여 가치가 큰 작품이라고 하던데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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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신라의 승려 혜초가 다섯 천축국을 답사하고 그들 나라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입니다.


  • 나무777
    나무77723.11.22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한 뒤 727년(성덕왕 26)에 쓴 책입니다. 이 책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펠리오가 중국 북서 지방 간쑤성의 둔황석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인도 및 서역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나체 생활의 풍속, 가봉뇌옥(枷棒牢獄)은 없고 벌전(罰餞)만 있는 법률, 장(醬)은 없고 소금만 있으며, 여러 형제가 아내 한 사람으로 같이 사는 것, 살생하지 않는 것, 흙솥에 밥을 짓는 것 등 여러 색다른 풍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혜초(慧超, ?~?)는 저술한 견문록입니다. 혜초는 당에서 활약한 신라 출신의 승려입니다. 그는 730년경 천축국(天竺國), 곧 지금의 인도로 구법(求法) 여행을 떠나 4년 동안 불교의 성지들을 순례하고 돌아온 후 견문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혜초 자신이 방문한 다섯 천축국과 주변, 곧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세, 자연, 의복과 언어, 풍습, 경제와 생활, 종교 상황 등이 기술되어 있어, 정확하면서도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 혜초는 특이하게 자신이 지은 오언시(五言詩) 5수를 남겨 놓았는데, 이 시를 통해 긴 여행 중에 느꼈던 감동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성덕대왕 때, 신라의 승려 혜초가 인도 5국 (五國) 부근의 여러 나라로 순례를 떠난 뒤의 행적을 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기인데 여행 중에 겪었던 내용들을 기술한 것 입니다. 혜초는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신라의 승려 혜초가 다섯 천축국을 답사하고 그들 나라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 인도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과 다른 남아사아 지역, 중동으로 분류되는 페르시아 까지 여행했습니다.

    1권은 완질이 남아있지 않고 일부분만 현존하는데 현존본은 동부 인도 기행으로부터 비롯되며 그곳에 진기한 나체족이 살고있다고하며 쿠시나가라에 대한 견문으로 이곳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곳이며 다비장과 열반사 등이 있음을 기록했습니다.

    한 달동안 다시 남쪽으로 여행하여 바라나시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석가모니가 오비구를 위해 최초로 설법한 곳이라 하며 다시 동쪽으로 여행해 라자그리하에 닿아 불교 역사상 최초의 사원이었던 죽림정사를 참배하고 법화경의 설법지 영축산을 방문합니다.

    다시 남쪽으로 길을 잡아 세존이 대각을 이룬 부다가야를 참배, 대각사와 보리수 등에 관해 언급, 이어 서북쪽으로 길을 찾아 중천축국으로 갑니다.

    이곳에 이른바 사애영탑이 있다고 하며, 각각을 방문, 석가의 탄생지인 룸비니도 방문, 다음 여행지는 남천축국인데 아잔타, 엘로라 등은 방문한 흔적이 없습니다.

    다시 서북으로 방향을 돌려 서천축국을 거쳐 북천축국을 방문,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 일대와 간다라 문화 중심지를 차례로 방문, 그 서쪽에 있는 현재의 파키스탄 서북 일대를 답사,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현재의 카슈미르 지방을 거쳐 대발률, 소발률 등을 방문

    이번에는 거꾸로 간다라지방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스와트, 길기트, 페샤와르 등지를 방문, 그 북쪽에 있는 오장국, 구위국 등을 답사, 다시 실크로드를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바미안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국경지대인 투카라로 들어가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페르시아를 지나며 안국, 조국, 석과국, 페르가나국 등은 방문하지 못하고 그 일대에서 수집한 이야기만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불교를 모르고 배화교를 믿으며 어머니와 자매도 아내로 맞는 등 진기한 풍속을 소개했습니다.

    또 바미안이나 카피스 등에서는 형제가 몇이건 공동으로 한 아내를 맞이한다고 기록, 그곳에서부터 중국으로 귀로를 잡아 동쪽으로 지금의 파미르고원에 있던 호밀국을 지나 식야국을 거친 후 총령을 지나 지금의 중국 영토인 갈반단국에 도착합니다.

    동쪽으로 카시카르를 지나 구주국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때가 727년 11월 상순으로 여기서 그의 여행이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