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하여 궁금합니다
얼마전에 영화 올빼미를 보았는데 소현세자가 독살을 당하더군요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많이 없다고 들었는데 혹시 관련 사료들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 1646년 4월 26일 [인조실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세자가 창경궁 환경당(歡慶堂)에서 죽었다. 세자는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하였으나 기국과 도량은 넓지 못했다. 일찍이 정묘호란 때 호남에서 군사를 무군(撫軍)할 적에 대궐에 진상하는 물품을 절감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제거하려고 힘썼다. 또 병자호란 때에는 부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갔는데, 도적 청나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세자를 인질로 삼겠다고 협박하자, 삼사가 극력 반대하였고 상도 차마 허락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세자가 즉시 자청하기를, “진실로 사직을 편안히 하고 군부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신이 어찌 그곳에 가기를 꺼리겠습니까.”하였다. … 그러나 세자가 심양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어서는 모든 행동을 일체 청나라 사람이 하는 대로만 따라서 하고 전렵하는 군마 사이에 출입하다 보니,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가 무부(武夫)와 노비들이었다.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전혀 폐지하고 오직 화리(貨利)만을 일삼았으며, 또 토목 공사와 구마(狗馬)나 애완(愛玩)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크게 인망을 잃었다.
이는 대체로 그때의 궁관(宮官) 무리 중에 혹 궁관답지 못한 자가 있어 보도하는 도리를 잃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세자가 10년 동안 타국에 있으면서 온갖 고생을 두루 맛보고 본국에 돌아온 지 겨우 수개월 만에 병이 들었는데, 의관들 또한 함부로 침을 놓고 약을 쓰다가 끝내 죽기에 이르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 세자의 향년은 34세인데, 3남 3녀를 두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조 15년 1637년 정월 30일 청태종 앞에서 굴욕적인 항복 의시를 행한후 소현세자가 볼ㄹ모로 잡혀 8년간 심양에 인질로 쟙혀있다가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2년만에 병사하였지요 독살의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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