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주는 중전이 낳은 딸을 의미하고, 옹주는 후궁이 낳은 딸을 의미합니다.
옹주 :
고려 초기에는 내 ·외명부에 일정한 제도를 설치하지 않았으나 현종 때 국왕의 첩에게 귀비(貴妃) ·숙비(淑妃) 등의 호(號)를 주었고, 정종(靖宗) 때에는 이들을 원주(院主) ·원비(院妃)와 궁주(宮主)라 하던 것을 충선왕 때 궁주를 옹주로 개칭, 정1품의 품계를 주었다. 그 뒤 옹주라는 칭호가 남용되어 논란이 있자 1391년(공양왕3) 왕자의 정비(正妃)와 왕의 유복(有服) 동성자매(同姓姉妹), 조카딸, 군(君)의 정처(正妻) 등에 한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후궁(後宮) 소생의 딸에게 주던 작호이다. 공주(公主)와 함께 품계(品階)를 초월한 무계(無階)로, 외명부의 가장 윗자리이다. 옹주에게 장가 든 자는 처음에는 종2품의 위(尉)로 봉(封)하였다가 나중에는 정2품으로 올려주었다. 또한 옹주의 처소를 옹주방이라 하였다.
공주 :
이 명칭은 중국의 진(秦)·한(漢)나라 때 황제가 딸의 혼인을 삼공(三公:大司馬·大司公·大司徒)에게 맡겨 주관하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중국에서는 주위의 군주를 회유하기 위하여 외민족(外民族)에게 출가시킨 제실(帝室)이나 왕족의 부녀를 화번공주(和蕃公主)라고 하였는데, 고려시대 충렬왕(忠烈王) 이후 공민왕에 이르기까지7명의 왕에게 출가해 온 원(元)나라의 공주가 그 예이다.
한국의 경우 삼국시대이전부터 이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고대에는 고구려의 왕자 호동(好童)과의 비련의주인공 낙랑공주(樂浪公主), 고구려 평원왕의 딸로서 온달(溫達)에게 시집간 평강공주(平岡公主) 등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는 공주에게 정1품 품계를 주었으며, 조선 전기의 《경국대전》에서는 왕의 정실이 낳은 딸을 공주라 하고, 측실이 낳은 딸을 옹주(翁主)라 하여 구별하는 한편, 공주는 품계를 초월한 외명부(外命婦)의 최상위에 올려놓았다.
따라서 공주의 남편은 중국과 같이 부마도위(駙馬都尉)라 하고, 공주의부마에게는 처음에 종1품의 위(尉)를 주었다가 정1품의 위로 올려 주었으며, 옹주의부마에게는 처음에 종2품, 다음에 정2품으로 올리는 등 역시 구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