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에게 생기는 사리는 무엇이며, 어디에 생기는건가요?
불교에서 스님을 화장을 하고나면
'사리'라고 하는것이 나온다고 합니다.
'사리'란 무엇이며,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이다. 범어 사리라(Sarira)의 음역으로서 산골(散骨), 유신(遺身), 영골(靈骨)이라고 번역한다. 사리를 세는 단위로는 '과(果)'를 사용한다.
원래는 골조(骨組), 신체,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로부터 유골, 특히 부처님이나 성자의 유골을 의미하고, 다시 스님들의 시신을 화장(다비)하고 난 후 유골에서 추려 낸 구슬 모양의 작은 결정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1993년 열반한 우리나라 성철스님에게서 사리 110과가 나온 바 있다.
석가모니의 유골은 생신(生身) 또는 신골(身骨) 사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신(法身) 사리라 한다. 스님의 시신 자체는 전신(全身) 사리, 유골 또는 다비(화장) 후 나온 결정체는 '쇄신(碎身) 사리'로 불린다.
쇄신사리는 큰 것이 콩, 작은 것이 팥알만하다. 검정색과 흰색, 붉은색, 노란색 등이 뒤섞인 영롱한 색을 띠며 일반적으로 수행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眞身舍利)는 여덟 섬 네 말이 나왔다고 전하며 주로 지금은 남방 불교 국가에 모셔지고 있다. 한국에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등에 석가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비식을 하면 나온다는 구슬 같은 승사리의 정체를 두고 여러 주장이 있는데 뼈와 화장에 쓰이는 장작의 성분이 특정 온도에 반응하여 얻어지는 결정이 사리라는 것이 일반적 추측입니다. 실제로 본차이나는 소의 뼈와 장석, 카오리나이트를 고온에 구워 만들어지는데 이 추측은 고행을 한 사람들에게서 사리가 많이 나온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 뼈의 성분이 정상적인 성분 외 중금속이나 기타 이물질이 많아 사리 생성에 유리한 조건이 될수 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리 :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여겨지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 입니다.
유신, 신곡 이라고 불리며 사시 또는 유골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리는 인체를 화장하고 난 뒤에남겨진 뼈 전체 또는 가루가 된 뼈조각까지 폭 넓게 포괄하기도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리(舍利)는 불교 용어로서, 원래는 신체 또는 석가모니나 성자의 유골을 지칭하는 용어이나, 오랜 수행을 한 스님을 화장한 결과 나오는 구슬을 이르기도 한다. 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 शरीर (Śarīra)는 시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리는 본래 몸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인체를 화장하고 난 뒤 남겨진 뼈 전체나 가루가 된 뼛조각들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사리는 신성한 유물로 간주되고 불교도들에게 매우 존경받는 것입니다. 수정 구슬, 진주, 작은 뼈 조각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깨달은 존재나 영적인 개인이 남긴 유물이라고 합니다. 즉, 개인의 깨달음이나 영적인 힘에 대한 가시적인 연결이 사리인 것입니다. 사리탑은 불교도를 위한 예배와 순례의 장소 역할을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신(遺身)·신골(身骨)이라고도 한다. 사시(死屍) 또는 유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응음의 玄應音義≫ 제6에는 “사리는 바로 설리라(設利羅)라고 하며 번역하여 신골이라 한다.”고 하였다.
사리는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형태에 따라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쇄신사리(碎身舍利)를 말하고 있다. 즉 신체 자체로 볼 때는 전신사리이고 다비(茶毘)한 뒤의 신골은 쇄신사리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쇄신사리는 세골(細骨) 내지 흰 분말의 경우가 있으나,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사리신앙이 더욱 신비화되어 둥근 구슬의 형태로 된 영골(靈骨)·영주(靈珠)로 인식되었다.
즉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에 이르기까지 다비 후의 유신(遺身)이 사리로 신봉되었다. 보통 불사리(佛舍利)를 으뜸으로 말하고 있으나 그 외 수행자의 유신인 고승의 사리 역시 신봉되어 탑을 만들기도 하였다.
대체로 이 같은 신골사리 외에 부처님의 교설인 불경이 법사리(法舍利)로서 신봉되어 신골사리와 함께 불탑(佛塔) 속에 봉안된다. 부처님의 신골을 진신사리(眞身舍利), 불경을 법사리,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僧舍利)라 하여 구분하고, 승사리를 봉안하는 곳은 부도(浮屠)라고 하여 뒤에 와서는 불탑과 다른 형태로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의 열반 뒤 그 제자들은 인도의 장례법에 의하여 유신을 다비하였더니 8곡 4두(八斛四斗)나 되는 많은 사리가 출현하여 이를 8국에 분배하여 봉안하였고, 그 뒤 아소카왕(阿育王) 때에는 팔만사천의 불사리탑을 건립하는 등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또 ≪대당서역기≫에는 현장(玄奘)법사가 돌아올 때 여래의 육사리(肉舍利) 150립(粒)을 가져왔다고 하였으며, 의정(義淨)도 사리 300립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서역으로부터 불골(佛骨)이 전해져서 사리신앙이 널리 행하여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불사리를 보내왔으므로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興輪寺)에서 맞이하였다는 것이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 뒤 안홍(安弘)이 진(陳)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호승비마라 등과 함께 귀국할 때 ≪능가경 楞伽經≫·≪승만경 勝鬘經≫과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636년(선덕왕 5)에 당에 들어간 자장(慈藏)은 오대산 태화지(太和池) 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불정골(佛頂骨)과 치아(齒牙)사리 등을 받아서 645년(선덕왕 14)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왕에게 건의하여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오대산 중대에 적멸궁을 건립하고 그 지하에 정골을 봉안하였다. 그 밖에 월정사,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지리산 화엄사, 영월 사자사에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751년(경덕왕 10)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하였고, 그 뒤 신라 후기 및 고려시대에도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조선 초기에도 사리에 관한 신앙은 왕실을 중심으로 매우 성행하였다. 태조가 대신에게 “사리가 어찌하여 생기느냐?” 하고 묻자, 하륜(河崙)이 “정기가 쌓인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수련하면 다 사리가 있습니다. 바다의 조개도 보주(寶珠)가 있고 뱀도 명월주(明月珠)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서 그런 구슬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자 왕이 웃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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