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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를 계속 추진하여 1898년 11월 2일 중추원신관제(中樞院新官制)를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발전적인 계획은 수구파들의 모략으로 좌절되었다. 그들은 독립협회가 의회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고종을 폐위하고 박정양(朴定陽)을 대통령, 윤치호(尹致昊)를 부통령으로 한 공화제(共和制)를 수립하려 한다는 전단을 뿌렸다.
이에 고종은 경무청(警務廳)과 친위대(親衛隊)를 동원하여 독립협회 간부를 체포하고 개혁파 정부를 붕괴시킨 다음 조병식(趙秉式)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 정부를 수립하였다. 여기에 자주 독립세력을 꺾어버리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한 일본이 수구파에 가담, 독립협회의 운동을 탄압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고종이 받아들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강제해산함으로써 독립협회와 수구파의 싸움은 수구파의 승리로 끝났다.
수구파 내각은 1899년 8월 17일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제정·공포하였다. 이에 따르면 국호는 대한제국이고 정체는 전제군주제이다. 수구파 정부는 국제열강의 세력균형을 이용하여 실력을 기르는 데 힘쓰기보다는 친러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이를 지켜본 일본은 러시아와의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안 정부도 1904년 1월 국외중립(局外中立)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서울을 점령하고 2월 23일 대한제국을 위협하여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체결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은 침해되기 시작, 일본은 1904년 7월 20일에는 군사경찰훈령(軍事警察訓令)을 만들어 치안권(治安權)을 빼앗은 데 이어 8월 22일에는 한일외국인고문용빙(韓日外國人顧問傭聘)에 관한 협정서로 재정권을 빼앗아갔고, 1905년 11월 17일에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같은 해 8월 29일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제국 [大韓帝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