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즉위 후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 노선을 취하였으며 전후 복구와 대동법의 실시 등 여러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잦은 옥사와 중립외교,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유폐한 일로 인해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1623)에 의해 폐위되었다고 합니다.
1623년 3월 14일 새벽, 서인들이 주도하고 남인들이 동조하여 인조반정이 발생하였습니다.
이귀, 김류, 최명길, 김자점, 이괄 등과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은 군사를 동원하여 궁궐을 장악했습니다.
이들은 광해군을 인목왕후 앞으로 끌고 갔는데, 인목왕후는 광해군과 폐세자에 대한 처형을 주장하였으나, 인조와 반정 세력은 반정의 명분인 폐모살제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배를 보내는 선에서 반정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곧 반정군에게 이이첨, 정인홍, 김개시 등은 죽고, 40여 명의 관리가 구금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