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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1.26

일본의 사사키 코지로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는 미야모토 무사시로 알려져 있는데요.

미야모토 무사시의 최대 라이벌로 사사키 코지로를 뽑는데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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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사키 코지로는 일본의 검술가로 미야모토 무사시의 라이벌로 유명합니다.

    주로 사용한 검은 모노호시자오로 3척에 달하는 장도를 사용했습니다.

    간류 또는 유파를 창시해 간류라 불리기도 하나 실제 그의 호가 간류우 인 관게로 이를 유파로 착각했다는 설이있으며, 기록에 따름녀 사사키 코지로는 츄죠나가마사가 창시한 츄죠류를 배웠다고 하니 기본적으로 츄죠류의 아류였을 것입니다.

    성명절기는 츠바메가에시인 듯하며 전해지는 묘사를 보면 강하게 내려젠 직후 그대로 베었던 방향으로 올려치는 기술로 보이며, 이름의 유래는 제비를 잡으려고 만든 기술이라든가 제비의 모습을 본뜬 기술, 혹 나룻배에서 강 위를 날라가던 제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베어 붙은 이름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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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국시대 말기와 에도 시대 초기에 활약했다고 전해지는 일본의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와의 대결로 유명합니다.

    청각 장애인 이었으며

    미야모토 무사시의 라이벌이며

    사사키 코지로'라는 풀네임이 맞는지가 논란은 있습니다.후나지마에서 무사시와 결투해 패한 간류라는 자가 실존했다는 건 사실로 여겨지는 인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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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사키코지로는 전국시대 말기와 애도시대 초기에 활약 했다고 전해지는 일본의 검호 입니다.

    사사키 가문은 원래 전국시대 이즈모 슈고 였던 아마고 집안의 원류이자 문가에서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집안 입니다.

    다만 사사키코지로가 이 가문의 사람인지 아니면 성을 사칭하거나 우연히 성씨가 같았을 뿐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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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국 시대 말기와 에도 시대 초기에 활약했다고 전해지는 일본의 검호로 마야모토 무사시와의 대결로도 유명합니다. 마야모토 무시시의 라이벌로서 모노호시자오(빨래 너는 장대)라는 3척에 달하는 노다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사키 고지로라는 풀네임이 맞는지가 의문이지만 후니지마에서 무사시와 결투해 패한 간류라는 자가 존재했다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대결 당시에는 간류 고지로로 불렸다가 사후 130년이 지나 쓰여진 이천기에서야 비로소 뜬금없이 사사키라는 성이 갑자기 붙어서 사사키 고지로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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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름은 남아 있지만, 실제로 존재했는지 의심되는 희대의 검사. 3척이 넘는 장도 모노호시자오를 다루는 미검사(美劍士)이다. 출생은 에이로쿠(永祿) 무렵, 게이쵸 10년~17년에 이름을 떨쳤다고 하지만, 그 진위는 정확하지 않다. 사사키 코지로를 기록한 서적들은 전부 다 연대에 모순이 있고, 최대의 호적수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기록한 「오륜서」에는 그 이름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코지로는 에치젠(越前)국 출신이며 토다류(富田流) 종가에서 사사, 긴 타치(太刀)를 즐겨 사용했으며, 스승의 친동생을 꺾은 후 스스로 “간류(岩流)”라 칭했다고 한다. 그 후, 무예의 달인으로서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고, 스오(周防)국의 와타가와(綿川)에서 나는 제비조차 떨구는 비검, 츠바메가에시를 고안해냈다고 한다.


    그 후, 많은 나라의 무예가들을 벌벌 떨게 한 끝에, 사관한 번(藩)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후나지마(훗날의 간류지마)에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결투하고, 목숨을 잃는다. 그 장도 때문에 칼집을 지닌 채로는 싸울 수가 없어서 무사시를 앞에 두고 칼집을 던져버리지만, 그 모습을 본 무사시의 한 마디 「코지로, 졌군」은 너무나도 유명하리라.


    확실한 기록을 가진 일본 굴지의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 그 호적수로 알려진 미검사 사사키 코지로지만, 그 실상은 수면에 비친 달처럼 확실하지 않다. “그럴 듯한 인물”은 있었다고 하지만, 현대에 전해지고 있는 사사키 코지로는 사람들이 날조한 가공의 대검호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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